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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88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시발지 부평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시발지 부평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1-15 22:52:11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시발지 부평 글·조우성 (시인ㆍ인천시 시사편찬위원) 개항 직후 인천에는 청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파란 눈의 상인, 종교인, 외교관, 군인들로 제법 흥성거렸다. 그러나 아직 경인선 철도가 놓이기 전이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행객들은 대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서울에 도착하려면 족히 한나절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보다 먼저 인천에 신식 숙박업소가 생겼는데, 그 중 가장 이름난 곳이 ‘대불(大佛)호텔’이었다. 이 양식 호텔은 음식 솜씨가 좋고, 종업원들이 영어를 곧잘 해 외국인이 선호했다고 한다. 당시 서울까지 가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걷거나 가마를 타거나 말을 빌리는 것이었다. 189.. 2023. 5. 19.
국제외교의 1번지였던 제물포 국제외교의 1번지였던 제물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8-29 11:58:31 인천역사 책갈피 국제외교의 1번지였던 제물포 개항 직후인 1884년 10월에 체결한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에 의해 일본, 청국, 영국, 러시아, 독일, 미국은 제물포에 자국인들을 거주하게 했고 특히 일본, 청국, 영국, 러시아는 인천에 영사관을 설치했다. 글·조우성 시인/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일청영로(日淸英露), 영사관 세워 제물포가 개항된 것은 1883년이다. 그에 따라 지금의 남구 관교동에 있던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가 설치 5백여 년 만에 폐지되고, 대신 개항장으로 정해진 제물포-지금의 중구 내동-에 인천감리서(仁川監理署)라는 새로운 이름의 관청이 들어섰다. 인천감리서는 과거 도호부가 수행해 왔던 행정기능과 더불어 외.. 2023. 5. 13.
문헌 속 개항기 인천-(2)‘조선신보’-‘조선신문’ 문헌 속 개항기 인천-(2)‘조선신보’-‘조선신문’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8-25 01:01:24 제호 바꾸며 1941년 초까지 발행 문헌 속 개항기 인천-(2)‘조선신보’-‘조선신문’ 인천은 외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이었기에 일본인들이 일찍부터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한 도시다 일본인들은 서울보다 먼저 신문을 발행하여 한때는 몇 개 신문이 자리잡기도 했었다. 조선에서 일본인들이 최초로 신문을 발행한 도시는 부산이다. 일본 거류민들의 재부산상법회의소가 1881년 12월10일부터 ‘조선신보’라는 순간(旬刊) 신문을 창간하여 약 6개월간 발간한 것이다. 인천에서 발행된 『조선신보』와 명칭은 같지만 별개의 신문이었다. 인천에서는 1890년 1월28일에 일인들이 ‘인천경성격주상보’라는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 2023. 5. 13.
문헌 속 개항기 인천-(3)신찬 인천사정 문헌 속 개항기 인천-(3)신찬 인천사정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8-25 00:59:36 개항기 인천 상황 종합 정리 문헌 속 개항기 인천-(3)신찬 인천사정 이 책의 편자들은 인천개항사를 비롯하여 상업과 무역, 내지 행상, 운수·교통, 해관, 행정 교육, 종교, 신문지, 생환, 풍속, 기후 풍토, 위생 들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권두에 삽입된 는 1890년대 후반 인천의 주요 기관과 건축물 배치 상황을 알 수 있는 약도로 개항기에 발간된 인천 안내 지도 가운데 그 내용이 가장 충실하다. 이 책은 개항기 인천의 경제구조 및 조계지의 사회상, 풍속 연구에 다양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자료이며,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 과정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인천을 “수.. 2023. 5. 13.
근대화의 중심지 인천의 모습 근대화의 중심지 인천의 모습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7-20 11:03:23 개항 신문물 '홍수'속 격동하는 인천 상공업 중심지-통신체계의 급속 발전 ④ 개항과 근대문화이야기 - 근대화의 중심지 인천의 모습 1글 / 문상범 1883년 부산, 원산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을 하게 된 인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이루어진 것들이 여럿 있다. 개항으로 수많은 외래 문물이 도입되면서 인천의 모습이 바뀌어 갔고 새로운 일이 생겨나고 처음 보는 것들이 들어왔다. ○ 최초의 상업 회사 설립 담배갑과 세창양행바늘 1883년 개항과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인천에 상업회사가 세워졌다. 개항으로 자연스레 중국인, 일본인, 서양인들이 인천을 생활터전 삼아 활동했고, 가장 먼저 서양인들이 상업 회사를 만들어 상업 활.. 2023. 5. 11.
인천과 병와 이형상 인천과 병와 이형상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7-18 22:09:14 인천과 병와 이형상 이영태(인하대 BK21 연구교수) # 인천에 대한 그리움 병와 이형상(李衡祥)은 인천 죽수리(竹藪里) 소암촌(疏巖村)에서 태어났다(효종 4년, 1653년 5월). ‘소암촌’이 주안의 ‘석바우’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상은 동춘동에 딸린 ‘소암마을’이 그곳이다. 그의 호는 병와(甁窩) 또는 순옹(順翁)이며, 본관은 완산(完山)으로 효령대군 10세손이다. ▲ 청학동부근모습 25세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29세 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벼슬을 시작했다. 병와는 환로의 대부분을 성주목사·청주목사·동래부사·경주부윤·제주목사 등 외직에서 수행했다. 그의 나이 48세 때인 1700년(숙종 26) 경주부윤으로 재직 중 .. 2023.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