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500 영종도 중산동-사람 살린 가짜 지관 영종도 중산동-사람 살린 가짜 지관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2 12:15:01 사람 살린 가짜 지관 산소 자리를 봐 주는 사람을 지관이라 했다. 영종도 중산리에 한 지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중산리 마을에 떠돌이 청년이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개 정승이 돌아가셨는데, 그 정승의 산소 자리를 잡으려고 지금 야단이야. 좋은 자리를 잡아 주기만 하면 술이나 밥은 물론 옷도 주고 상금도 후히 준다는 거야.” 청년은 속으로 옳다구나 그 집에서 신세를 져야겠구나 하고 정승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지기가 그의 행색을 보고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청년은 다 떨어진 삿갓에 초라한 도포를 입고 있어 양반 행색이긴 하지만 거지나 별반 다름이 .. 2023. 3. 8. 인천 문학초교 뒤 수채골 이야기 인천 문학초교 뒤 수채골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1 12:08:55 헛수고로 돌아간 산신 우물가의 백일 기도 수채골은 옛 문학초등학교 교장 사택 뒷산 작은 골짜기를 말하는데 이곳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이 우물을 사람들은 ‘산신우물’ 이라는 이름 그대로 아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이 우물가에서 치성을 다해 백일 기도를 드리면 태기가 없던 사람도 아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우물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마을에 아이를 가지지 못한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세상 아무런 부러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아이가 없는 것이 근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이 수채골 산신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보, 수채골.. 2023. 3. 8. 강화 교동도 청주펄 이야기 강화 교동도 청주펄 이야기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1 12:05:41 마을이 사라지고 생긴 청주펄 강화도에 딸린 또 하나의 섬 교동도는 원래 3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다. 화개산, 수정산, 율두산 3개가 그 섬의 중심이었다. 그러다가 고려 때 강화도가 임시 수도가 되면서(1232~1270) 식량확보를 위한 간척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조선 시대에 와서도 계속되었고 많은 갯벌과 섬들이 그때 메워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교동도가 되었다. 교동도에는 지금도 간척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논 가운데에서 조개 껍질이 발견된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조개맨들’ 이 그 한 예다. 그리고 아직도 곳곳에 갯벌이 조금 남아 있다. 그 중 한 곳이 청주펄이다. 교동도에는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주(貞州)라.. 2023. 3. 8. 간석동 장사 박창보 간석동 장사 박창보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09 00:50:42 여인으로 변장한 장사 박창보 지금의 남동구 간석동에 박창보라는 장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원래 포수였는데 워낙 힘이 센 장사인 데다가 담력도 크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당시 간석동 일대는 숲이 울창했는데 그 숲을 악명이 높은 도둑의 무리가 은신처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워낙 사납기로 이름난 도적단이어서 관가에서조차 선뜻 토벌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설령 도둑 몇 명을 잡았다 해도 감히 처형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뒤 곧이어 닥칠 나머지 도적 떼들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형편이 그러하니 백성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관가의 체면이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런 소문을 전해 들.. 2023. 3. 8. 구월동 오닭전설 구월동 오닭전설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09 00:48:13 도둑 시아버지를 뉘우치게 했다는 오닭 전설 남동구 구월동에‘오달기(또는 오닭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주막거리가 있었다. 이곳은 인천부 청사가 있는 관교동 쪽에서 서울로 가거나 수원 쪽 방향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길가에 자연스럽게 주막이 생겨났다. 이 길목에 맹(孟)이라는 성을 가진 힘이 세고 몸이 매우 장대한 사람이 주막을 열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힘이 셌는지 동네 사람들에게는 맹 장군으로 통했다.주막을 열어 놓기는 했지만 실상 맹가는 주막에 묵는 나그네들을 터는 도둑이었다.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자신의 주막에 묵으려 찾아오면 그 옷차림에서 금품이나 돈을 많이 가졌을 듯싶은 사람을 눈여겨보았다가 다음날 그가 떠날 차비를.. 2023. 3. 8. 하늘도 감동한 오읍약수 강화오읍약수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09 00:47:04 하늘도 감동한 오읍약수 1232년, 몽골군대가 이 땅을 침략하였을 때 고려 고종 임금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정부를 강화도로 옮겨 끝까지 싸우고자 하였다. 장맛비를 맞으며 강화도로 들어온 고종 임금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언제 있을지 모르는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여봐라, 몽골군은 잔인하기로 소문난 군대다. 우리가 이곳에서 그들을 막아내야 한다. 우선 궁궐을 보호할 수 있는 내성(內城)을 가장 먼저 쌓도록 하라.” 고종의 명에 따라 궁궐과 성곽을 쌓는 작업이 시작되었다.관리들은 우선 임금이 거처할 궁궐의 자리를 잡기 위해 자신들이 떠나온 개경의 궁궐이 있던 곳과 비슷한 지형을 찾아 나섰다.그리하여 현재 고려궁 터가 .. 2023. 3. 8. 이전 1 ··· 571 572 573 574 575 576 577 ··· 58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