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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통학 기차통학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2 12:47:12 「콩나물시루」같은 전철을 타고 통학을 했거나 지금 하고 있는 학생들에겐 통학의 낭만은 커녕 지겹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러나 경인선 전철화 이전, 기차가 학생들의 「이동 독서실」 또는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이동 카페」였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내일의 꿈과 향학열을 싣고 다니던 기차통학에 얽힌 갖가지 낭만적인 이야기들은 지금도 인천인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경인선이 개통된 것은 1899년. 인천지역 학생들이 기차를 타고 서울 학교에 통학하기 시작한 것은 1915년께 부터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인천은 일본인 1만여명을 포함해 인구 6만~7만명의 도시였다. 인천의 초등학교라고야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 박문학교, 영.. 2023. 3. 8.
인천의 명물, 냉면 인천의 명물, 냉면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7-01-12 12:44:45 인천의 명물, 냉면 『인천』하면 자장면을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일제에 의한 강제개항 이후 오히려 더 이름났던 인천의 대표적 음식은 냉면이었다. 서울 등지에서 냉면을 먹으려고 인천으로 「냉면여행」을 왔을 정도였다. 여기에다 서울 명동이나 종로까지 자전거로 냉면배달을 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마저 전해지고 있으니, 인천의 냉면이 얼마나 유명했는 지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인천에 냉면거리가 따로 형성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중구 답동 성당에서 용동 마루턱을 지나 배다리 너머까지 유명한 냉면집 몇 군데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이 곳에서 이들 냉면집의 자취를 찾아볼 순 없지만 한때 전국에 그 이름을 .. 2023. 3. 8.
수준원점을 아시나요? 수준원점을 아시나요?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7-01-12 12:43:56 인천시 남구 용현동 인하공업전문대학. 바로 옆 인하대학교와 캠퍼스를 같이 쓰는 이 대학에 가면 붉은 벽돌로 만든 특이한 시설물 하나를 만난다. 신입생들은 무엇인 지 잘 모른다. 『캠퍼스를 치장하기 위한 조각품이 아닌가요?』라고 묻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그 의미와 유래를 따져 들어가면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인천」이 오롯이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수준원점(水準原點). 높이 3미터 46센치미터, 넓이 2.2평. 여기엔 대체 무엇이 있을 까? 흔히 산의 높이를 해발(海拔)로 부른다. 바다로 부터의 높이란 뜻. 특정 바다를 기준으로 삼아 해발을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바다는 어디를 기준점으로 삼을까? 바로 인.. 2023. 3. 8.
인천의 박물관 인천의 박물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2 12:43:21 박물관은 「문화창조의 센터로서 지역 사회·문화 발전의 척도」로 일컬어진다. 영어 「Museum」의 유래를 봐도 박물관이 어떻게 시작됐는 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기원전 3세기께 이집트 왕 프톨레마어 Ⅱ세가 부왕의 뜻을 이어 궁전 한 켠에 진귀한 수집품들을 모아 놓고 그리이스 학자들을 초청, 철학과 문예를 연구했으며 이곳을 그리이스 신화에 등장해 철학, 미술, 문예 등을 담당하는 여신인 「Muse」에게 바쳤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것. 우리나라도 개화기를 거치면서 서양의 영향으로 박물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기 시작됐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으면서 인천에서 박물관이 태동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지만,.. 2023. 3. 8.
요리집과 권번 요리집과 권번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2 12:42:27 개항 이후 인천의 대중음식문화는 일본인과 청인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뤄졌다. 한동안 이들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서울보다는 인천 개항장에서 더 많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청관거리의 중국음식점과 함께 이렇다 할 일본식 `요리집'이 인천에 가장 먼저 상륙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개항 초창기만 해도 인천의 음식점이라곤 주막과 목로술집, 국밥집, 색주가집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다 외국인들이 급격하게 늘면서 대형 전통 한식집과 일본 요리집, 중국음식점 등이 앞다퉈 들어서 음식문화를 이끌었다.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요리집은 기녀(妓女)를 접대부로 고용, 술과 음식을 내놓는 형태로 우리 술집문화와는 아주 달랐다. 당시 일본인들은 `어요리(御料理)'란 간.. 2023. 3. 8.
인천의 성냥공장 인천의 성냥공장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2 12:41:35 인천의 성냥공장 군 복무를 한 대한민국 남자치고 아마 「인천의 성냥공장」이란 노래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노랫말을 누가 붙였는지는 몰라도 가사 내용이 저속해 대놓고 부르기는 좀 민망스러운 노래. 하지만 그래도 비속어가 통용(?)되는 군대라는 특수집단 내에선 6·25 이후 군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불린 「애창곡」이었다. 군인들은 「우스개 말」이 담긴 이 노래를 부르며 피곤한 심신을 잠시 달래기도 했다. 실제로 성냥제조업은 반세기 이상 인천 공업의 대명사로 통했다. 그만큼 성냥공장이 많았다는 얘기. 성냥 제조업의 시발점이자 본거지가 바로 인천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냥공장이 세워진 곳이 어딘 가에 대해선 기록마다.. 2023.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