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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85

(18) 냉면과 인천 (18) 냉면과 인천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5-14 22:36:45 ‘원조 외식메뉴’ 종로까지 배달 (18) 냉면과 인천 냉면이 인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라고 하면 이 무슨 소리인가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냉면이라면 당연히 평양이나 함흥을 떠올릴 터이니까. 그러나 냉면은 분명 ‘인천이 상품(商品)으로 개발하여 전국에 전파시킨 인천 향토음식’이라는 점이다. 냉면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항 이후, 인천항은 미곡(米穀)을 포함한 각종 물자의 출입이 늘어나고 축항 공사 같은 큰 역사(役事)가 시작되면서 외지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 소문이 퍼지면서 당시 인천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너도나도 모여들던 이른바 ‘엘도라도’였다. 특히 19.. 2023. 5. 26.
‘경인 아라뱃길’ ‘경인 아라뱃길’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5-08 11:28:24 ‘경인 아라뱃길’ 김윤식 인천문협 회장/시인 경인운하의 새 명칭이 ‘경인 아라뱃길’로 결정됐다고 한다. 지난달 30일자 지역의 모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국민적 여망 속에 추진되고 있는 경인운하”의 이름을 ‘경인 아라뱃길’로 정하고 5월 1일부터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서울의 한 일간지는 한국수자원공사가 ‘경인 아라뱃길은 단순히 뱃길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면서 21세기 녹색 성장을 선도할 명품 뱃길을 여는 역사적 사업’이며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뱃길을 제대로 만드는 첫 걸음’이어서 그에 맞는 새 이름을 지었다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 명칭의 탄생은 .. 2023. 5. 25.
(17) 인천 밴댕이 (17) 인천 밴댕이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5-08 11:21:54 ‘바다의 銀魚’ 목구멍에 봄날 온 듯 (17) 인천 밴댕이 “5월에 잡히는 밴댕이는 밴댕이가 아니라 바다의 은어(銀魚)다. 연하고 기름져서 버터를 씹는 것 같다. 물론 회라야 하고, 상추쌈에 곁들이면 더욱 별미다. 소금을 뿌려 구워서 꼬리를 쥐고 더운밥에 살을 훑어 얹어서 먹는 맛도 기가 막히다.” 의사이면서 향토사가요, 또한 미식가로 유명했던 고 신태범 박사가 생전에 펴낸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 인천 밴댕이에 대해 적은 글이다. 실제로 밴댕이 맛을 보듯 생생하고 맛깔스런 표현이 정말 미식가답다. 지나치게 쇼비니즘에 사로잡혔다고 할지 모르나 밴댕이는 우리 인천이 으뜸이었다. 인천, 강화 연해에서 잡히는 밴댕.. 2023. 5. 25.
(16)삼치골목-동인천-주머니 옹색한 문인들에 입소문 (16)삼치골목-동인천-주머니 옹색한 문인들에 입소문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5-01 21:05:27 주머니 옹색한 문인들에 입소문 (16)삼치골목 중구 전동, 옛 축현학교 뒤쪽 일대에 삼치집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다. 하고 많은 생선 중에 하필이면 왜, 삼치가 상품의 주종이 됐는지도 모르겠고, 또 이곳은 바다와 사뭇 거리가 있고, 신포동 생선전(生鮮廛)과도 떨어져 있는, 생선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내륙(內陸)(?)인데 어떻게 삼치가 상륙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뒤져보면, 아마 1980년쯤부터인가, 얼마 전까지 마을금고가 있었던 건물 옆 대화양조장으로 들어가는 골목 안 오른쪽 한 일본식 가옥에? 인천에 흔한 값싼 생선들을 막걸리, 소주 안주로 구워냈었.. 2023. 5. 25.
(15)신포동거리-문화를 잃어버린 인천 예술인 요람 (15)신포동거리-문화를 잃어버린 인천 예술인 요람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4-24 20:19:14 문화를 잃어버린 인천 예술인 요람 (15)신포동거리 “손설향(孫雪鄕) 시인이 마지막이었는지, 아니면 한국화가 우문국(禹文國) 선생의 발걸음이 마지막이었는지 모르겠다. 생전에 그렇게도 신포동과 약주를 사랑하던 그분들의 뒷모습을 끝으로 신포동은 정녕 주인을 잃고, 사람을 잃었다. 문화를 잃어 버렸다.” 몇 해 전, 사라져 버린 한 시절 인천 문화의 본거지이자 예술인들의 요람이었던 신포동 거리와 시장 일대를 회상하며 아쉬움과 허망함을 적었던 글줄이다. 문화 도시 신포동의 마지막 명운이 다한 때는 대략 80년대 말쯤이리라. 조금 더 늘여 잡으면 90년대 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2023. 5. 24.
(14)계양산-인천 방위 요처 ‘부평의 鎭山’ (14)계양산-인천 방위 요처 ‘부평의 鎭山’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4-21 03:00:22 인천 방위 요처 ‘부평의 鎭山’ (14)계양산 계양산(桂陽山)은 인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산이다. 아니, 인천 역사에서 중요한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부평지역의 역사를 상징하는 산이라고 하는 것이 뜻이 더 온전할 듯 싶다. 원인천 지역의 진산(鎭山)이 문학산이라면 부평지역은 계양산이 진산의 구실을 해왔다 계양산은 해발 395m로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앞서 말한대로 역사적으로 부평지역에 있어 유서가 깊은 산이다. ‘동국여지승람’ 부평도호부 고적(古跡)에 “부평의 계양산 고성은 삼국시대 축조된 석성으로서 주위가 1천937척이나 모두 퇴락하였다”는 구절이 보이고, 조선 고종 20년(1.. 2023.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