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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85

자유공원 길 자유공원 길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1-10 22:10:02 찐빵행상·야바위꾼…인천의 萬象 집합소 김윤식·김보섭의 인천 재발견-(1) 자유공원 길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치고 만국공원, 곧 자유공원에 대해 일말의 감회라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공원이, 정확히 말해 웃터골을 포함하는 이 일대가 인천 사람들의 마음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그대로 생활이 되고 생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공원을, 이 웃터골 일대를, 지난 날 인천의, 인천 사람들의, 표상이요 정체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눈오는 날 자유공원.) “축항과 월미도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우거진 숲, 맥 장군상. 길가에 앉아 사주팔자를 점치던 판수와 점쟁이들, 완장을 두른 유료 사진.. 2023. 5. 19.
서울시 청사와 제고(濟高) 강당 서울시 청사와 제고(濟高) 강당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8-09-18 01:29:51 서울시 청사와 제고(濟高) 강당 김윤식 시인·인천문협 회장 서울시 청사 해체와 복원 문제로 서울시와 문화재 당국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시민단체도 서울시를 대상으로 법적 투쟁을 벌이겠다는 며칠 전 모 방송 보도를 보았다. 서울시청에 대한 안전 검사가 적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 청사의 해체 문제는 당초 서울시가 문화재위원회의 보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본관 건물의 해체에 돌입하자 문화재위원회가 사적(史蹟)으로 가지정함으로써 해체 공사가 전면 중단되기에 이른 것으로 현재 두 기관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안전을 내세우면서 문화재위원회의 사적 지정 기준이 모호해 수긍할 수 없.. 2023. 5. 14.
살아남는 ‘일본집’ 앞에서 살아남는 ‘일본집’ 앞에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15 17:14:09 살아남는 ‘일본집’ 앞에서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인천시 중구 송학동 3가에는 오늘날에도 아직 몇 채의 일본집이 남아 있다. 여기뿐이 아니라 중구 내에는 여기저기 낡아가는 대로 몇 채씩 일본집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일본집들은 연륜을 아무리 낮춰 잡아도 63년 이상이 된 집들이다. 대부분이 퇴락할 대로 퇴락한 상태인 데다가 낙후한 중구의 구세와 겹쳐 매매 거래가 없어서 흉가처럼 비워 놓은 집들도 여러 채가 된다. 주인들은 집을 비우고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집이 팔리면 가차 없이 헐려지고 다른 새집이 들어선다. 그런데 며칠 전 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신포동에서 이른바 ‘구제 옷가.. 2023. 5. 6.
명품 도시 ‘북성포구’에서 명품 도시 ‘북성포구’에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12 16:30:50 명품 도시 ‘북성포구’에서 ▲ 김윤식 객원논설위원 지난 토요일에는 인천 연수문화원이 주최하는 ‘작가 시인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에 초대되어 갔었다. 이 행사의 취지는 시민들과 문인이 직접 대화를 하면서 문학의 현장으로서 인천을 재발견한다는 것이다. 인천을 주제로 한 작품,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 혹은 인천출신 문인들의 문학 정신이 배태(胚胎)한 성장기 고향으로서 그 현주소를 찾아가 보는 행사라고 할 것이다. 이번은 바다와 어물(魚物)에 관련한 시를 여러 편 썼던 내 차례여서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옛 인천의 부두들-화수부두, 만석부두, 그리고 북성구지(북성포구)를 돌아보는 것으로 코스를 잡았다. 태풍 나리의 북상으로 .. 2023. 5. 6.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21 00:43:30 김윤식의 풍물기행-⑥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 한국 최초의 상업 광고를 낸 상점이 인천 중앙동에 있던 세창양행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1896년 김윤식(金允植)이 주동이 되어 폐간된 한성순보에 이어 한성주보(漢城周報)를 발간하는데, 그 제4호 2월22일자에 한문으로 된 세창양행의 광고 기사가 처음 실린다. 이것이 언론 매체를 통한 광고의 효시로 기록된다. 여기서 덕상(德商)이라는 말은 독일 상회라는 뜻으로 독일을 한자로 덕국(德國)이라 했기 때문에 ‘덕국상회(德國商會)’ 정도를 줄여서 쓴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 고백이라는 말은 당시 쓰이던 중국식 표현으로 광고라는 말에 해당한다. 광고라는 말은 .. 2023. 4. 1.
배갈과 인천 사람들 배갈과 인천 사람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20 09:18:24 풍물기행- 배갈 김윤식 풍물기행 배갈과 인천 사람들 인천 최초의 일이 곧 대한민국 최초라는 말들을 한다. 개항 이후 열강의 문물, 제도 대부분이 인천항을 통해 처음 수입되고, 또 최초로 인천에 자리를 잡거나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예가 미국과 구미국 최초로 맺은 외교 조약, 아펜젤러에 의한 감리교 전래, 서구식 공원, 철도 부설, 등대 설치, 기상 관측 개시 등등이 있는데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좋은 사례라거나 꼭 자랑스럽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단한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중국술 배갈(白酒)을 맨 처음 즐길 기회를 가진 한국인도 역시 백이십여 년 전 인천 사람이 아.. 2023.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