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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85

김윤식의 인천 풍물기행 ④ 경제화와 고무신 김윤식의 인천 풍물기행 ④ 경제화와 고무신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7-03-17 16:41:27 김윤식의 인천 풍물기행 ④ 경제화와 고무신 지금은 우리 생활에서 멀어져 간 고무신에 대해 대부분 한말 법부대신을 지낸 이하영(李夏榮)이 1919년 서울에 설립했다는 대륙고무를 최초의 메이커로 기록한다. 물론 이하영의 첫 제품은 순종(純宗) 임금이 신었다는데, 그것은 1922년의 일이다. 그밖에도 1921년 김성수(金性洙)의 중앙상공주식회사, 고중희(高重熙)의 반도고무공업소, 1922년 이후 김연수(金秊洙)가 만들었다는 별표 고무신 등을 거론한다. 그러나 한국형 고무신을 창조해 낸 원조는 분명 우리 인천일 것이다. 그리고 고무신이 탄생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견본 구실을 했던 것 역시 인천에서 발명.. 2023. 3. 31.
인천 풍물기행 -민어(民魚) ① 인천의 상징, 여름철 근해 어류 인천 풍물기행 -민어(民魚) ① 인천의 상징, 여름철 근해 어류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7-03-17 16:33:33 인천 풍물기행 -민어(民魚) ① 인천의 상징, 여름철 근해 어류 황해 바다 도시 인천의 상징이라면 누구나 얼핏 소금과 더불어 근해에서 잡히던 풍부한 어류를 떠올릴 것이다. 특히 어물세시기(魚物歲時記:故 愼兌範 박사께서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 이미 재미난 어물 세시기를 쓰신 적이 있다)를 작성할 수 있을 만큼 달마다 철마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잡히던 어물만은 단연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외지 사람이나 인천 사람이나 아마 똑같이 수긍할 것이다. 우리 입맛을 끌던 많은 종류의 생선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 우선 겨울과 초봄에 걸쳐 잡히는 복어, 홍어, 숭어,.. 2023. 3. 31.
조기와 꽃게... 김윤식/시인 조기와 꽃게... 김윤식/시인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3 09:38:16 조기와 꽃게... 김윤식/시인 II쌍고동 울었던 그때그시절II 찬밥에 물 말아 굴비 머리까지 `쪽쪽' 게 뚜껑에 밥 비벼 한공기 `뚝딱'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최고 진미의 대중적 해물로는 대략 이 4월부터 5월까지 성시를 이루던 참조기와 꽃게를 꼽을 것이다. 하인천 부두를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이던 참조기와 백옥같이 희고 풍성한 단맛을 가진 꽃게의 살! 황해 물에서 나는 그 밖의 다른 좋은 생선이 왜 또 없을까만 이것들은 바로 이맘때쯤 우리 한국인의 구미를 사로잡는 대표적인 어물이면서 세계 최고라 해도 좋을 가미(佳味)를 지녔기 때문이다. 아마 인천에서 나서 자란 사람이라면 이런 호들갑에도 전혀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2023. 3. 29.
은성*짐다방*별다방 시절의 팝 (POP) 은성*짐다방*별다방 시절의 팝 (POP)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9 19:33:32 은성*짐다방*별다방 시절의 팝 (POP) 흐르는 팝 선율에 가슴속 갈증 식혀 화선장 위의 은성다방*기업은행 앞의 짐다방과 조금 뒤에 생긴 동인천 대한 서림 자리의 별다방이 있었다. 김윤식의 쌍고동 울었던 그때 그시절 그 시절의 봄 봄은 어느 해나 마찬가지로 늘 똑같은 훈풍과 향기 가득한 꽃가루와 촉촉한 비를 뿌리며 우리에게 오지만 그것을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같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1960년, 4·19와 더불어 중학생이 된 그 해 봄은 특히 설렘 그것이었다. 어려운 입학 시험에 급제를 하여 중학생이 되었다는 기쁨 뿐만 아니라 몸 저 밑바닥 어느 구석에서 아련하게 무슨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2023. 3. 26.
신포동의 세모(歲暮) 신포동의 세모(歲暮)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7-03-07 15:59:41 신포동의 세모(歲暮) 쌍고동 울었던 그때 그시절 가난한 술잔 기울이며 덕담 건네던 신포동의 세모(歲暮) 김윤식/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서’라는 시가 생각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시간이 이 한 해의 가장 어둡고 추운, 그리고 가장 깊고 그윽한 마지막 밤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내가 눈발을 맞으며 숲길을 가는 것도 아니고, 나를 데려다 주는 작은 말이 방울 소리를 울리는 것도 아니지만, 1966년 대학 1학년, 남 앞에 시 나부랭이라도 외운다는 자랑이 승해 서툰 영어로 기를 쓰고 외우던 이 시가 왜 찬바람 불고 눈발 날리는 오늘 이토록 못 견디게 내 가슴 한 구석에 다시.. 2023. 3. 26.
용동권번 용동권번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7-02-13 00:53:49 용동권번 경동 신신예식장 앞 공터에서 싸리재 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용동으로 내려서는 골목 계단길이 나온다. 이 계단은 완만하고 긴 계단참을 두고 삼 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돌계단에 뜻밖에도 그 옛날 ‘용동 시절’을 말해 주는 흔적이 남아 있다. 삼 단 중 맨 위 계단, 위에서 세 번째 계단석에 ‘龍洞券番, 昭和 四年 六月 修築’, 그리고 중간 계단 맨 윗돌에 ‘龍洞券番’이라고 가로로 음각된 글자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용동은 여전히 인천의 밤의 중심지로 호시절을 누리고 있었는데 이런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용동 163번지. 그 옛날 인천의 한량들이 밤마다 부나비처럼 날아들던 골.. 2023.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