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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동이야기55

50년대 만석동의 여러 풍경들 50년대 만석동의 여러 풍경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7:27 "까만 갓난쟁이들이 물에 불어 떠다니다가.." 신정숙(73세)할머니가 들려주는 50년대 만석동의 여러 풍경들 50년대에는 고가도로 아래 철길까지 바다물이 들어왔다. 내 고향이 황해도 해주야. 전쟁통에 이곳(43번지)으로 피난 와서 낳은 큰아들이 지금 51살이니까 내가 여기 산지 51년이 되었지. 그때 내 나이가 22살이었어. 맨 처음 여기 왔을 때 집도 별로 없었지. 한 다섯 집쯤 있었나 아마 그럴 게야. 요 앞(만석동 16통 1반)에 일제시대 연탄공장 터가 있었고 지금 만석 1차 아파트 자리에는 강원회사라고 석유회사가 있었어. 그리고 지금 만석1차 아파트 건너편으로 '곡수골'이라고 일제시대 때 일본사람이 지은 벽돌 건물.. 2023. 5. 2.
"14살 때 신의주 떠난 후 70년이 넘도록 못가봤네 "14살 때 신의주 떠난 후 70년이 넘도록 못가봤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5:51 "14살 때 신의주 떠난 후 70년이 넘도록 못가봤네" 용윤서 할아버지(85)의 고향이야기 뗏목은 일일이 다 칡뿌리로 구멍을 내서 엮어서 만들었어 내 고향은 평안북도 신의주야. 만주하고서 다리하나 사이지. 열네살 때 고향을 떠나 70년이 되도록 가보지 못했어. 신의주 건너편이 만주땅 단동이야. 지금이야 국경 넘어가면 검문하겠지만 그때는 다 왜놈들이 관리하니까 그냥 다녔어. 신의주 너머부터 상해관까지는 만주로 치고 그 너머는 중국으로 치고 했는데, 만주에 왕이 따로 있었어. 만주로 가려면 배를 타거나 다리를 건너가고 했어. 신의주와 만주를 잇는 다리(압록강 철교)가 하나 있었는데, 기차도 다니고 차도.. 2023. 5. 2.
단옥선 할머니(78)의 연평도 피난살이 “배급 떨어지면 세식구가 하루종일 누워있었어”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4:38 “배급 떨어지면 세식구가 하루종일 누워있었어” 단옥선 할머니(78)의 연평도 피난살이 뭐 얘기할거이 있어야지. 그저 피난 나온 거 그것 밖에 없어. 원래 고향이 옹진군 동강면 사이리인데, 14살 때 근처 동강면 금산으로 시집을 갔지. 그때는 왜놈들이 '처녀공출'한다고 딸 가진 부모들이 다들 일찍 시집보내고 했으니까. 6.25가 난 게 내가 26살 때인데, 애 아바이랑 7살, 3살 먹은 딸 둘을 데리고 피난을 나온 게야. 전쟁이 난다는 얘기가 동네에 돌아서 끝섬으로 피했었는데, 끝섬가고 그 다음날 전쟁이 났지. 끝섬은 육지랑 가까웠어, 끝섬, 제도, 육도 뭐 이런 섬들은 육지에서 총 쏘면 총알이 날아오고 했.. 2023. 5. 2.
박상규 할아버지(81)의 일제시대 만석동 일제시대 만석동 仁川愛/만석부두 관련 스크랲 2007-03-06 13:02:07 “부두가깝고 공장들 있고 만석동 살기 좋았지.” 박상규 할아버지(81)의 일제시대 만석동 일본화물선과 한국인 노동자들이 북적되는 일제시대 인천항 내가 만석동에 들어온 게 해방전이야. 내 나이 스무 살에 왔으니 벌써 60년이 넘었구먼. 부산에서 대장일을 배우고는 먼저 인천에 올라온 친구의 소개로 이곳으로 온 게지. 인천에는 나 같은 대장장이가 없었어. 만석동에 일본 사람이 하는 대장간이 하나 있긴 했지. 왜정 때는 '대쬬'라는 수첩이 있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기술자 자격증쯤 되려나... 일본놈들이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기 전, 소하 15년(1941년)에 전국에 흩어져있는 기술자들을 관리하는 수첩을 만들었는데 그게 '대쬬'야. 그.. 2023. 5. 2.
김순남 할머니(69세) 순창에서 만석동 올라오던 이야기 김순남 할머니(69세) 순창에서 만석동 올라오던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1:20 “ 막내업고 큰딸 손 꼭쥐고 밤기차 타고 올라왔제.” 김순남 할머니(69세) 순창에서 만석동 올라오던 이야기 1965년 김 할머니는 네 아이와 밤기차에 몸을 싣고 고향 순창을 떠나왔다. 내 고향이 전남 담양이고 시댁이 전북 순창이여. 순창으로 내 나이 열 아홉에 시집와서 11년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는가. 거 시댁이 섬진강 있지 않는가. 우리는 남원 대강면이라고 곡성 가차운 물가서 살았제. 거 5년 전에 한번 가보니 개발허고 전기로 물끌어다 농사짓고 양어장 만든다고 파헤쳐서 많이 더러워졌드먼. 그때는 물이 진짜로 맑고 자갈도 모래도 많고 민물고동도 많았는디 말여. 거그선 우리 애 아버지허고 내내 농.. 2023. 5. 2.
"내 사는 이 골목은 30년동안 한치도 달라진 게 없어." "내 사는 이 골목은 30년동안 한치도 달라진 게 없어."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6 13:00:27 "내 사는 이 골목은 30년동안 한치도 달라진 게 없어." 김근수 할머니(72세, 만석동 9번지)의 ‘살아온 이야기’ 나 어릴 때? 고향? 거 통일이 되긴 되갔어? 되긴 뭐이가 돼, 통일 돼도 나 같은 늙은인 구경도 못하겠지. 고향도 많이 변했을텐데... 뭐 거기 땅이나 딛어보고 죽겠나 그 안에 다죽지. 내고향이 황해도 동강면이야. 위로 해주, 용당포라는 데가 있고 연백하고 강하나 두고 사이에 옹진이 있고 옹진 안에 우리 부락이 있지. 그 아래로는 소서읍 연평 뭐 이렇고 말여. 거 우리 살던 데가 해변가라 농사도 좀 짓고 고기 잡는 배들도 있고 그랬네.고향 내 살던 집은 초가집이었어. 뭐 동네.. 2023.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