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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옛적의 인천이야기87

강화월곳-황형 장군의 선견지명 강화월곳-황형 장군의 선견지명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6 08:18:14 황형 장군의 선견지명 황형(黃衡 1459-1520)은 일찍이 과거 무과에 급제하여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했을 때 큰 공을 세운 장군이었다. 북쪽으로부터 여진족의 침입이 있었을 때는 두만강을 건너 여진족의 마을을 소탕하였고 남쪽에서 대마도의 왜구들이 침입하여 난동을 부린 삼포왜란 때는 중종 임금의 특명을 받고 왜구를 물리치기도 했다. 연미정 그러나 황 장군은 무예에만 뛰어난 장군이라기보다는 문(文)과 무(武)를 아울러 갖춘 장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가 나이 60이 넘어 이곳 강화도의 연미정 근처에 집을 짓고 살았을 때였다. 비록 몸은 서울을 떠나 시골에 와 있었지만 항상 나라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 2023. 3. 10.
계양산에 온 충렬왕과 제국공주 계양산에 온 충렬왕과 제국공주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5 05:37:17 계양산에 온 충렬왕과 제국공주 고려 충렬왕은 태자 시절을 몽고에서 보내면서 원나라 세조의 딸 홀도로계리미실 공주와 결혼했으며 부왕이 죽자 공주와 함께 귀국해 왕위에 올랐다. 고려에서는 몽고 공주 출신의 왕비를 제국대장공주라고 불렀다. 또는 줄여서 제국공주라고도 했다. 원나라와의 왕실 혼인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로써 고려는 역사의 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양국의 우호 관계를 튼튼히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권신들의 세력에 억눌려 오던 왕실의 지위도 회복,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주성을 잃은 종속국으로 전락하여 이후 원나라의 많은 간섭을 받게 되었다. 제국공주가 몽고 양식의 생활을 하고 사사로이 부리는 사람도 원나라에.. 2023. 3. 10.
정수사 각시바위 정수사 각시바위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5 05:35:55 함허대사와 여인의 가슴아린 사연 깃든 명물 정수사 앞바다에 솟아오른 각시바위 강화도 마니산 자락에 자리잡은 정수사는 함허대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절 앞쪽 바다에 여인의 모습을 닮은 바위가 있다. 정수사에서 수도하던 함허대사는 훌륭한 스님이었지만 남편으로서는 매정한 사람이었나 보다. 옛날 함허대사가 정수사에 머물 때의 일이다. 출가하기 전에 결혼을 했던 모양인데 그 아내가 멀리서 함허대사를 찾아 왔으나 대사는 부인을 만나지도 않고 훌쩍 떠나버렸다. 부인을 만나면 힘겹게 쌓아온 수도가 무너질지 모르니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그러나 아내는 남편 만나기를 포기 할 수가 없었다. 간절한 그리움을 .. 2023. 3. 10.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삼랑성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삼랑성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4 05:01:05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삼랑성 남한에는 단군과 관련된 유적이 두 곳밖에 없다. 그런데 그 두 곳이 모두 강화도에 있다. 단군께서 나라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안함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참성단(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이곳 참성단에서 밝히는 이유도 단군과 관련된 이유에서다.)과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이 그것이다. 삼랑성의 원래 이름은 발이 세 개 달린 솥을 엎어놓은 모습이라는 정족산성(鼎足山城)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군의 아들과 관련된 삼랑성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먼 옛날 단군께서 이 땅에 나라를 세우고 난 후, 한강 입구에 자리한 강화도를 주목했다. 만약 다른 나라가 이 땅을 .. 2023. 3. 9.
덕적도 장사 박장군과 최장군 덕적도 장사 박장군과 최장군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3 00:22:33 장사 박장군과 최장군 옛날 덕적도 소야리에 매우 힘이 센 박 장군, 최 장군이란 두 사람이 있었다. 박 장군이 태어난 지 불과 한 해 정도 지났을 때였다. 어머니가 젖을 먹여 재워 놓고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아이가 무거운 솥뚜껑을 열고 손으로 밥을 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 엄마는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한편 걱정이 되었다. 이 아이가 장차 힘이 센 장사로 성장하면 화가 미치지 않을까. 결국 어머니는 눈을 질끈 감고 아이가 힘을 못 쓰게 어깨를 망치로 두들겨 때렸다. 그러나 아이는 끄덕도 없었다. 박 장군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스무 살 청년이 되었다. 이 무렵 소야리에서 지지라치배를 이용한 조기잡이가 한창이었다... 2023. 3. 9.
문학산 사모지고개-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갑옷바위 문학산 사모지고개-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갑옷바위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2 12:19:02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갑옷바위 예전에 사모지 고개에서 동춘동쪽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바위 하나가 있었다. 이 바위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름이 바위 석함에 갑옷을 넣어 두었다 하여 갑옷바위였다. 그러나 실상은 상자 바위로 불리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 바위는 사방 둘레에 금이 가 있는 데다가 아래위 바위 두 개가 뚜껑을 맞춰 덮은 모양으로 포개져 있는 것이 영락없는 상자 모양이었다. 그러나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상자 아래 부분은 일찍이 없어지고 뚜껑 형상의 바위는 얼마 전까지도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도시화가 되면서 이 또한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 .. 2023.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