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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옛적의 인천이야기87

강화-하음 봉씨의 발상지 강화-하음 봉씨의 발상지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9 00:29:27 하음 봉씨의 발상지 지루한 장마가 끝나자 강화도 하점면에 사는 한 노파가 밀린 빨래를 들고 집을 나섰다. 노파가 집 가까운 연못에서 빨래를 시작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연못 한가운데로 오색 무지개 빛이 비치고 이어 연못의 물이 솟구치면서 옥(玉)으로 만든 함이 하나 올라왔다. 노파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옥함을 건져 올려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으앙 하는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비단에 싸인 잘생긴 옥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파는 너무나 놀라 뒤로 넘어질뻔했다. 그러나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이 아기는 하늘에서 내려 준 귀한 아기가 틀림없어. 나와 같은 미천한 사람이 키울 것이 아니라 나라님께 바쳐야 .. 2023. 3. 12.
연평도 조기잡이 신 임경업 장군 연평도 조기잡이 신 임경업 장군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8 00:42:57 연평도 조기잡이 신 임경업 장군 조선 16대 인조 14년(1636)에 청나라 태종이 우리나라를 침입했다. 이때 조선에서는 의주 부윤 임경업 장군이 의주국경을 지키고 있었다. 임경업 장군의 용맹성과 뛰어난 전술을 청나라 태종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청나라 군사는 의주를 피해 돌아서 다른 길로 서울을 공격했다. 적군이 의주를 피해 지나갔다는 것을 알아차린 장군은 급히 군사들과 함께 도성으로 오려 하였으나 십만 대군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격렬한 싸움이 계속 되었으나 결국 패배하여 인조 임금께서 청 태종 앞에 무릎을 끊고 세 번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숙이며 항복을 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청 태종은.. 2023. 3. 11.
독갑다리-숭의동 독갑다리-숭의동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8 00:42:09 으스스한 이름의 도깨비다리 장사래말이라 불리던 숭의동은 오늘날은 전혀 알아볼 수 없이 변했지만, 1920년대 이전 낙섬 일대에 염전을 축조하며 긴 방죽을 쌓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가였다. 1903년 장천리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던 것을 보아도 이 지역에 사행천(蛇行川)처럼 길고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개천이 있어서 장사래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장사래말은 1906년에는 여의리, 장천리, 독각리로 나누어지는데 이 독각리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독갑다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 독갑다리에 대해서는 외다리를 뜻하는 ‘독각(獨脚)’에서 유래했다는 등 몇 가지의 해석과 견해가 있다. 아무튼 장사래말이나 독각리 같은 명칭이 사용된.. 2023. 3. 11.
강화-사모 바위와 족두리 바위 강화-사모 바위와 족두리 바위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8 00:40:29 사모 바위와 족두리 바위 옛날 강화도의 혈구산 밑에 강씨 성을 가진 한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도 잘 생겼을 뿐 아니라 총명하여 다섯 살 때 이미 천자문을 다 외웠다. 그 집안에서는 이 아이가 자라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되어 집안을 일으킬 것이라며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강 도령이 나이 열 다섯이 되던 어느 날 우연히 부모님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여보, 우리 아이도 이젠 장가 보낼 때가 되었는데 어디 좋은 규수가 없는지요?” “그렇지 않아도 한양의 김 대감 집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소. 내가 알기로도 그 쪽은 집안이나 규수도 나무랄 데가 없으니 조만간 내가 한번 한양에 다녀올 .. 2023. 3. 11.
강화-왕자가 죽은 살챙이 마을 강화-왕자가 죽은 살챙이 마을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8 00:39:41 왕자가 죽은 살챙이 마을 강화도는 유배 1번지라고 할 만하다. 많은 왕족들이 이곳으로 귀양을 왔고, 더러는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시대 최고의 폭군이었던 연산군과, 왕족으로 이곳에서 나무꾼 생활을 하다가 왕이 된 철종 임금, 그리고 광해군의 동생으로 8살 나이에 강화에 귀양 와서 목숨을 잃은 영창대군이다. 선조 임금은 나이 40이 되도록 왕비에게서 난 아들이 없었고 후궁에게서 난 자식만 10여 명이 있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라는 큰 난리가 나자 둘째 아들인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그런데 몇 년 후, 왕비(인목왕후)의 몸에서 왕자(영창대군)가 태어났고 2년 뒤 광해군은 왕이 되었다. 그러나 .. 2023. 3. 11.
소청도에 버려진 화장쇠 소청도에 버려진 화장쇠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7 09:34:50 소청도에 버려진 화장쇠 소청도에 사람이 살기 오래 전에 이 섬을 돌아 지나가는 배 한척이 있었다. 이 배는 멀리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 나라 물건을 파는 무역 상선이었다. 배에는 선장을 비롯하여 여러 명의 선원들과 이들의 잔심부름을 하고 밥을 지어 주는 젊은 화장쇠가 타고 있었다. 화장쇠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문전 걸식을 하며 다니던 아이였는데 마음씨 착한 선장이 이를 불쌍히 여겨 배에 태워 자식처럼 대해 주었다. 화장쇠 또한 선장을 따르고 공경하여 선원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그날은 여러 달 항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선원들의 마음은 모두 가벼웠다. 어떤 선원은 부인에게 선물할 고운 옷감을 펴 보이며 자랑.. 2023.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