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의 옛모습299

인천전환국 인천전환국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10-11 23:11:42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통된 신식화폐가 인천에서 주조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개항이후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화폐 유통이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조선 정부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화폐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1883년에 처음으로 조폐 기관인 전환국을 서울에 설립하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제조기계와 기술인력 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근대적인 화폐를 제조할 수 없었다. 이에 1885년, 인천에 있었던 독일의 세창양행의 설계로 새롭게 전환국 건물을 마련하고 기계를 새로 도입하여 1888년에 3종의 신식화폐(동전)를 주조했다. 최초로 발행된 신식화폐는 ‘개국 497년’의 연호로 발행된 1환 은화와 10문, 5문의 적동화였다. 이.. 2023. 6. 14.
맥아더 장군 동상 제막 맥아더 장군 동상 제막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8-09 10:20:21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맞아 맥아더 장군 동상 제막.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맞아 인천 만국공원에서 한·미 고위급이 참석한 가운데 맥아더 장군 동상 제막식을 거행. -다그라스 맥아더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위해 동상 제막. -공산군을 압록강까지 몰아낸 맥아더 장군의 공훈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 -조정환 외무부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을 대신하여 기념사를 대독. -동상건립위원회위원장 최규남씨의 기념사. -운크라 단장 콜터 준장의 인사. -최규남 문교부장관은 운크라 단장인 콜터 장군에게 동상모형을 조각한 기념품 모형을 전달함. -이기붕 민의원의장, 동상 앞에 화환 증정. 출처:대한뉴스 제 131호 57.9.16일 제작 2023. 6. 14.
69년 2월의 하인천 주변풍경 69년 2월의 하인천 주변풍경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6-09 23:47:54 Neil Mishalov의 Korean Photo Collection 중 69년 2월의 인천 오림포스호텔에서 내려다 보고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입니다. 중심부 붉은벽돌건물(흰글씨로 대한통운이라 씌어진 건물) 공터 맞은편부분에 한중문화관이 지어졌으며, 뒤쪽 일대가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왼쪽 제일 위쪽에 답동성당의 종탑이 보이고, 바로 밑은 검은 지붕이 58은행 (현재 인천음식업조합 )입니다.왼쪽 끄트머리2, 3층건물의 진원로프상사는 지금까지도 꿋꿋하니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제일 아래 노란건물은 "대한통운" 건물인데 번듯하니 새로 지었습니다. 바로 위 붉은 건물 수도사업소와 그 위 검은건물은 .. 2023. 6. 13.
해양방위의 보루, 인천 해양방위의 보루, 인천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5-31 15:27:32 해양방위의 보루, 인천 평온한 인천 바다에 해일이 일었다. 인천은 우리나라 지형상 북부와 남부의 중간에 위치하고 육지와 해양을 연결하는 지역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삼국시대 중국과의 최초 해양교류가 인천 능허대에서 시작되었고, 중국 사신의 영접처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문화교류에 실제적 영향을 끼친 개항이 제물포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이 바다에까지 미쳤고, 18세기 이래 이양선이 빈번히 출현하는 지역으로 동서양 외부 세력과의 충돌 현장이기도 했다. 평화 시에는 국제교류의 통로로서, 전시에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무력 충돌이 잦았던 것이다. 글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인천의 지정.. 2023. 6. 13.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제물포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제물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4-19 12:55:01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제물포 한적한 포구가 개항의 중심지로 인천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곧잘 쓰이는 제물포(濟物浦)는 지금의 중구 중앙동과 항동 일대에 있던 작은 포구였다. ‘제물’이라는 말은 조선 초기부터 이곳에 있었던 수군 기지 제물량에서 비롯됐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제물량만호’는 인천군 서쪽 성창포에 있다. 병선 4척과 무군선 4척으로 각 관의 좌우령 선군이 총 510명이라고 기록돼있다. 제물에 대해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제수’, 곧 ‘물을 다수린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인천 앞바다의 밀물과 썰물의 수심 차이가 워낙 커서 물때에 맞춰 배를 대지 않으면 갯벌에 배가 얹혀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 2023. 6. 12.
기와집 모여 있던 인천 최고의 부자마을-율목동 기와집 모여 있던 인천 최고의 부자마을-율목동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4-19 12:53:35 기와집 모여 있던 인천 최고의 부자마을 화장터자리 1960년대 공원으로 탈바꿈한 율목동 율목동(栗木洞)은 1910년대부터 인천의 최고 부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우리말로 밤나무골 또는 밤나무굴이라 이곳은 일제 때 일본인들에 의해 한자 그대로 옮겨져 율목리, 율목정 등으로 불리다 광복 후에 그대로 율목동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밤나무골이라는 이름의 기억이 많이 남아있는 동네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는 ‘밤골’이라는 땅이름이 적지 않다. 이를 한자로 바꾼 것이 ‘율곡’으로 조선시대의 유명한 성리학자 율곡 이이선생도 고향 땅이름을 호로 쓴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밤골은 ‘반골’에서 이름이 바뀐.. 2023.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