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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297

6.25 전쟁 당시의 인천풍경 6.25 전쟁 당시의 인천풍경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4-07 20:34:52 USS Winston (AKA-94), Inchon Harbor 1953년 8월 인천항. USS Winston은 한국전쟁 당시 활약한 안드로메다급 공격 화물선이다. 종전에는 거제도와 제주도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을 수송하는 '빅 스위치' 작전에 참여했다. 2023. 6. 12.
전쟁을 통해 만난 인천과 미국 전쟁을 통해 만난 인천과 미국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4-03 22:58:27 전쟁을 통해 만난 인천과 미국 경인년은 인천상륙작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족상잔의 뼈아픈 상처를 아물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저 세기적인 단안은 개항기 강화도를 침공해 ‘피의 빚’을 졌던 미국이 그를 되갚은 보은의 작전이기도 했다. 전후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 혹여나 내 고장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실상과 그 역사적 자취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시리즈를 통해 되새겨 보고자 한다. 글·조우성 (시인, 인천시 시사편찬위원) 대동강에서의 불행한 만남 19세기 인천 앞바다에는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모양의 배들이 나타났다. 이름 하여 ‘이양선(異樣船)’이라 했다. 조선의.. 2023. 6. 12.
해군海軍 창설의 요람, 인천 해군海軍 창설의 요람, 인천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4-03 23:07:07 해군海軍 창설의 요람, 인천 우리 고장 인천은 예로부터 해상 방위의 요충지였다. 그런가 하면 국가 비상 시에는 왕의 피난 루트이기도 했다. 조선 현종 때의 영의정 홍명하(洪命夏)가 인천과 월미도에 행궁(行宮)을 설치하자고 했던 것은 위난에 대비하고자 함이었다. 숙종 때 민치대(閔致垈)가 영종보다는 인천을 방어하는 것이 득이 될 것이라고 상소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인천은 삼면이 바다에 닿아 있고, 양서(兩西ㆍ황해도와 평안도)와 삼남(三南ㆍ충청, 전라, 경상도)을 호령하고 있는 형상인데, 인천을 버리고 영종에서 방어한다면 옳지 않다”고 아뢰니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글·조우성 시인·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인천의 군사적.. 2023. 6. 12.
외국인 마을, 송학동 이야기 외국인 마을, 송학동 이야기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4-03 22:57:45 외국인 마을, 송학동 이야기 인천은 개항과 더불어 근대문화 도입의 선구지(先驅地) 역할을 했다. 1883년 개항장 중구에는 각국인들이 몰려들면서 그들만의 거류지가 만들어졌고, 일본·청국·각국공동조계가 차례로 조성되면서 자의든 타의든 국제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해관(세관), 외국인 상사, 서구식 주택, 공원, 호텔, 등대, 경인철도, 갑문식 도크 등 각종의 근대문물과 사회시설이 최초로 생겨났다. 글 강옥엽(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인천의 외국인 마을은 1884년 체결된 제물포각국조계장정(The General Foreign Settlement at Chemulpo)에 의해 일본 및청국조계를 둘러싼 형태로 현.. 2023. 6. 12.
역사 속 월미도 파노라마 역사 속 월미도 파노라마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4-03 22:50:39 역사 속 월미도 파노라마 월미산 전망대에 올라서면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에 인천대교의 웅장한 자태가 그 속살을 드러내고, 수많은 상선과 유람선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때 개항이라는 이름으로 열강의 군함이 활보했던 이 평화로운 섬은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기도 하였지만, 섬 아닌 섬 월미도는 유사이래 인천과 운명을 함께 했고 앞으로의 화려한 부활은 곧 인천의 미래라 할 수 있다. 글 강덕우 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달꼬리’처럼 생기지도 않았지만 월미(月尾)라는 이름자로 인해 그렇게 불려왔던 섬 월미도는 ‘어을미도(얼미도→월미도)’에서 유래한다. 인천 앞 바다의 물이 휘감아 도는 형상을 나타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 2023. 6. 12.
역사 속 월미도 파노라마 역사 속 월미도 파노라마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4-03 22:50:39 역사 속 월미도 파노라마 월미산 전망대에 올라서면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에 인천대교의 웅장한 자태가 그 속살을 드러내고, 수많은 상선과 유람선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때 개항이라는 이름으로 열강의 군함이 활보했던 이 평화로운 섬은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기도 하였지만, 섬 아닌 섬 월미도는 유사이래 인천과 운명을 함께 했고 앞으로의 화려한 부활은 곧 인천의 미래라 할 수 있다. 글 강덕우 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달꼬리’처럼 생기지도 않았지만 월미(月尾)라는 이름자로 인해 그렇게 불려왔던 섬 월미도는 ‘어을미도(얼미도→월미도)’에서 유래한다. 인천 앞 바다의 물이 휘감아 도는 형상을 나타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 2023.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