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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297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12> 수인선 협궤열차 수인선 협궤열차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1-14 11:37:41 추억 속에 묻힌 ‘꼬마열차’ 수인선 협궤열차 아쉬움과 추억을 남기고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천의 명물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수인선 협궤열차다.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였던 수인선은 1937년 일제의 물자 수탈 수단으로 탄생했지만 반세기 넘게 인천~수원간을 오가며 서민들의 발이 되었다. 열차 한 량이 시내버스보다 작고 좁았지만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수인 지역 주민들에겐 더 없이 소중한 열차였다. 지난 1995년 12월 31일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58년 만에 운행이 중단되는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서민들의 온갖 애환을 몸으로 견뎌낸 열차다. 지금의 중구 신흥동에 옹기종기 모여 성업을 이루고 있는 기름집들도 수인선 .. 2023. 6. 9.
대불호텔]인천에 세워진 국내 최초 서양식 호텔 인천에 세워진 국내 최초 서양식 호텔… 숙박료 10배에도 성업 19세기 중엽부터 조선은 끊임없는 서구 열강의 통상 요구를 받았다.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는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난 군사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에 대한 통상 요구는 서구 열강뿐만이 아니라 주변국이었던 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일본은 1875년 조선 진출에 있어 기선을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다. 이후 이를 빌미로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됐고, 급기야는 1883년 인천의 제물포항이 열리게 됐다. 인천이 개항하자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등 열강들이 개항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작고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제물포는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다. 제물포 개항장에는 외국인의 이입과 함께 상공업, 종교, 교.. 2023. 6. 8.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⑪ > 인천 체육의 중심지 웃터골 운동장 인천 체육의 중심지 웃터골 운동장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12-30 15:06:56 인천 체육의 중심지 웃터골 운동장 로마 원형경기장 연상 웃터골 운동장은 현재 제물포고등학교가 들어선 자리다. 본래의 원형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예전에는 인천 체육의 중심지로 공설운동장 역할을 해온 곳이다. 이곳은 국내 근대 체육경기를 처음 시작한 곳으로 자유공원에서 기상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응봉산 분지 솔밭 골짜기에 위치한 삼태기 모양의 천혜의 체육시설이다. 자세히 보면 그리스의 고대극장이나 로마의 원형 경기장처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점이 갖추고 있다. 천연운동장인 분지에 완만하게 경사진 3면 기슭이 천연스탠드 역할을 하고 있어 이곳에서는 축구 경기와 야구 경기가 많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축구가 처음 .. 2023. 6. 6.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⑨전동>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12-24 15:41:42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 만든 곳(전환국) 자유공원 줄기 약수터 인천 최고의 물맛 요즘 우리의 전통 술인 막걸리 열풍이 대단하다. 동네 구멍가게에서나 볼 수 있던 막걸리가 백화점은 물론 일본에 수출된다고 하니 세상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막걸리가 급부상 한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숙취를 줄여 애주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막걸리는 악취를 발생하고 숙취로 인해 머리가 아픈 술로 각인돼 왔으나 이를 과학적인 체계를 거쳐 해소시킴으로 애주가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술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70년대 중반 동네마다 막걸리(대포집) 집이 성업했으나 그 중에서도 전동의 큰 항아리집(일명 · 전동집)이 제일 유명했다 마당 한.. 2023. 6. 6.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⑧오푼도>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12-09 19:06:48 5푼짜리 가짜 돈 만들어 오푼도로 불려 해수욕과 망둥어 낚시를 즐기던 시민들 놀이터 현재 인천에 거주하는 사람 중 오푼도(五分島)를 아는 사람은 10%도 안된다. 오푼도는 50년전인 1960년대까지 불리다 사라져간 옛말이 된 것이다. 오푼도는 원래 구한말 다소면 선창리 (중구 사동)에 속한 자그마한 섬이었다. 모래가 많은 섬이라 해서 사도(沙島)라 불렸는데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이 이 일대 바다를 매립해 자신들이 사는 거류지를 만들면서 육지(지금의 인천항)가 됐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일본인 거류지 (지금의 삼익아파트) 뒤쪽에 둑으로 바다를 막아 물을 담수시켜 놓아 인천시민들은 이곳에서 해수욕과 낚시(망둥어)를 즐겼다. 사도는 육지와 연.. 2023. 6. 5.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⑦긴담모퉁이)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⑦긴담모퉁이)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2009-12-09 19:04:38 국정원 별칭 ‘인하공사’, 신흥동 약속장소로 각광‘돌담길의 옛 추억 물신 물신 일본군 무기 저장소로 이용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⑦긴담모퉁이) 경동 싸리재에서 기독병원을 지나 신흥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긴담모퉁이가 있다. 이름 그대로 돌담이 길게 놓여져 생긴 이름인데 이제는 싸리재와 더불어 잊혀져가는 이름이다. 70년대 초 인천 토박이 청년들은 이곳을 가리켜 Long(긴) 담 Corner(모퉁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이곳의 돌담은 오태태라는 중국 사람이 살면서 쌓은 담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그에 대해 전하는 내용이 없어 확실치 않다. 이곳은 원래 신흥동과 경동 사이에 솟아있는 야트막한 구릉지였다. 현재 송도.. 2023.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