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옛모습299 세창양행사택 세창양행사택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6-10 11:30:44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 한국 최초의 상업 광고를 낸 상점이 인천 중앙동에 있던 세창양행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1896년 김윤식(金允植)이 주동이 되어 폐간된 한성순보에 이어 한성주보(漢城周報)를 발간하는데, 그 제4호 2월22일자에 한문으로 된 세창양행의 광고 기사가 처음 실린다. 이것이 언론 매체를 통한 광고의 효시로 기록된다. 여기서 덕상(德商)이라는 말은 독일 상회라는 뜻으로 독일을 한자로 덕국(德國)이라 했기 때문에 ‘덕국상회(德國商會)’ 정도를 줄여서 쓴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 고백이라는 말은 당시 쓰이던 중국식 표현으로 광고라는 말에 해당한다. 광고라는 말은 후에 일본 신문의 영향을 받으면서 .. 2023. 5. 27.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주택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주택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6-10 11:23:50 우리나라에 최초 서양식 주택이 전래된 곳이 바로 인천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맺어지면서 부산과 원산, 인천 등 3개 항구가 개항되고, 이들 개항지와 서울을 중심으로 외국공관, 상사건물과 주택, 종교관계 시설 등의 서구건축이 유입됐다고 한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주택은 인천에 개설된 세창양행(世昌洋行)의 사택으로 1890년경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사택의 형식상 본격적인 주택은 아니지만, 서양식 주택으로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현 자유공원내 맥아더 동상 자리에 건립된 이 서양식 주택은 건평이 173.15평이고 일부 2층의 벽돌집으로 외벽에는 회칠을 하고 붉.. 2023. 5. 27. 초기의 내리교회 십자가형 성전 초기의 내리교회 십자가형 성전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5-14 23:13:54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 내동 언덕에 한국 감리교 최초의 초가형 예배당인 언덕 위의 하얀집을 헐고 선교사의 도움 없이 순수한 내리교인의 모금으로 봉헌한 성전. 위 성전은 1950년대 초에 헐고 그자리에 다시 성전을 세워 전해지지는 않지만 뉴저지 연합 감리교에 소장되어 있는 설계도면을 찾아 복원을 추진 중이다. 2023. 5. 26. 6·25전쟁과 인천지역사회의 변화 6·25전쟁과 인천지역사회의 변화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4-10 11:58:28 6·25전쟁과 인천지역사회의 변화 양윤모(인하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1950년 6월 25일 새벽,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군의 전면적이고 기습적인 공격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지 채 2년이 안 된 시점이었다. 이 전쟁으로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됐다. 4일 만에 수도가 북한군에게 넘어갔으며 9월이 되기도 전에 낙동강 선까지 쫒기게 됐다. 다행히 유엔군의 개입으로 대한민국 국군은 반격의 시간을 갖게 됐고,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 시민 생명과 안전 책임자 시장이 먼저 피신 인천지역이 북한군 수중에 완전히 들어간 것은 1950년 7월 .. 2023. 5. 23. 인천전기주식회사 인천전기주식회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4-04 14:08:34 인천전기 주식회사 1904년 카를 발터 와가쿠 에이타로 를 비롯한 일본인 3 인이 설립 준비에 들어가 1906년 송월동에 설립되었다. 1912년 한국와사전기주식회사 로 통합 되어,그 회사의 인천 지점이 되었으며, 1915년에는 경성전기주식회사 인천지점으로 개칭되었다. 현대의 건축물은 공업시설과 관공서 등이 확실히 구분 되지만, 인천전기회사 건물은 외관상 발전 시설 이라는 느낌이 거의 없다. 건물좌우 벽체 상부를 거친돌로 마감하여 장식 하였는데, 이는 제임스 존스턴 별장에서 보듯 당시 많이 쓰이던 수법 가운데 하나 였으며,창문 상부는 반원 아치로 처리 하였다. 2023. 5. 23. 인천 세관 인천 세관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4-04 13:48:22 인천 세관 우리 고장 인천과 세관(稅關)의 역사는 길고도 밀접하다. 인천항의 개항 초기에는 세관이라는 명칭 대신 중국식으로 해관(海關)이라고 불렀다. 재정적으로도 열악했던 구한 말에는 세관에서 징수하는 관세(關稅)를 담보로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오기도 했고 관세 업무를 제대로 담당할 전문가도 없어서 외국인을 고용했던 것이 당시 우리의 실상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인천세관 건물은 현재 신포동 입구에 위치한 우체국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최상부의 감시탑을 위시해 당시 세관 건물은 인천항의 대표적인 건물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되고 말았다. 2023. 5. 23. 이전 1 ··· 31 32 33 34 35 36 37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