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199 친일파 친일파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2-28 00:46:28 친일파 조우성의 미추홀 송병준(宋秉畯)이 일본의 어용상인 오쿠라를 만난 것은 1876년이었다. 강화도조약 체결을 위해 내한한 일본의 전권대사 구로다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정부가 파견한 접견사를 수행하러 갔다가 그를 상면했던 것이다. 그는 군납업자 오쿠라로부터 성냥, 석유, 담배 등 박래품을 수입해 팔면 한 밑천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부산에 상관(商館)을 차렸지만 부민들로부터 왜놈의 앞잡이라는 지탄과 함께 쫓겨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임오군란 때는 집을 소각당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도망치기도 했다. 10여 차례의 위난 끝에 그는 일본의 보호를 받았고 훗날 친일파 정미칠적(丁未七賊)의 1인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두루 증언하고 .. 2023. 5. 21. 인천사진집성 인천사진집성仁川愛/인천이야기2009-02-19 14:33:44 인천사진집성조우성의 미추홀 지난 해 12월 초 서울 덕수궁에서는 이색 사진 전시회가 열렸었다. 한독 수교 125주년을 맞아 주한 독일대사관이 당시 양국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진 125점을 선보인 것이다. 물론 제물포 사진이 빠질 수 없었다. 이들 사료(史料) 가운데 상당수는 사진 연구가 정성길 선생이 독일에서 세창양행 설립자 마이어의 후손에게 입수한 것으로 특히 마이어가 세관 업무 담당자들과 찍은 것은 세창양행 간판이 소개된 최초의 사진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서울 무악재 전경, 1898년 방한한 독일 황태자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함녕전과 대한문, 독일 공사관 뒤뜰의 말 등도 한 세기 전 풍물을 보여주었지만 아무래도 인천 사진에 눈길.. 2023. 5. 21. 송현시장 송현시장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2-10 16:30:41 송현시장 조우성의 미추홀 사진술을 국내에 보급한 것으로 알려진 이는 김규진(金奎鎭)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보다 먼저 일본에 건너가 사진을 익히고 온 이가 황철(黃鐵)이며 그가 개항 초 제물포에서 찍은 사진이 실재한다는 것이 세간에 알려졌다. 그의 후손 한 분이 말년을 부평동에서 보내신 연고로 미추홀 자가 국보급 희귀 사진들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안복(眼福) 중의 안복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칠통마당 여기저기에 자리한 좌상(座商)들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제물포에 근대식 시장이 비로소 들어선 것은 그 십 수 년 뒤였다. 첫 상설 시장은 어시장(魚市場)이었는데 당시 수산업계의 대부로 알려진 정흥택이 내리(內里·내동)에서 생선류를 팔아오다가 19.. 2023. 5. 21. 난장(亂場)예총 난장(亂場)예총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2-19 14:36:30 난장(亂場)예총 조우성의 미추홀 이 도시에는 비평이 없다. 자칭, 타칭 비평가는 여럿이 있어도 비평은 없는 기이한 풍토다. 비단 그 같은 현상은 사회 어느 한 분야에 국한한 것은 아니지만 특히 문화 예술계에는 비평을 꺼리는 이상한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 매년 이런저런 말썽이 끊이지 않던 무슨 대전(大展)이 열렸던 때였다. 본보에서는 인천 출신 미술 평론가 모 씨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그 전시회의 배경과 구조를 적시해 느낀 그대로를 엄정하게 써 달라고 주문을 했었다. 모 씨는 본보에 평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그 후 몇몇 인사들로부터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번 다시 인천 미술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겠노라고 했고 지금까지.. 2023. 5. 20. 인하(仁荷) 인하(仁荷)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2-19 14:35:23 인하(仁荷) 조우성의 미추홀 한 세기 전 선대들이 썼던 서구의 옛 지명이나 인명을 지금에 보면 전혀 맥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이름 대부분이 한자 본래 뜻과는 상관없이 유사한 발음만을 취하여 사용하는 '가차(假借)'이기 때문이다. 귀에 익은 것으로는 이탈리아=이태리(伊太利), 터키=토이기(土耳其), 하얼빈=합이빈(哈爾賓), 헤이그=해아(海牙), 워싱턴=화성돈(華盛頓), 스코트랜드=소격란(蘇格蘭) 등이 있지만 학습을 통해 겨우 알게 된 것들이다. 인천 내리교회 교인들이 주축이 돼 1902년에 이민을 떠난 나라가 '아묵리가(亞墨利加ㆍ아메리카)요, 그들의 새 삶의 터전이자 해외 독립운동의 전진기지가 되었던 태평양의 고도가 '포와.. 2023. 5. 20. 인천 언론사 인천 언론사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9-01-30 11:05:51 인천 언론사 조우성의 미추홀 "첫째 인천과 경성의 상업 현황과 물가, 둘째 조선의 국세(國勢)와 백성들의 상황, 셋째 각 지방의 여러 소식 중 상업에 관한 것 및 세상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기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19년 전인 1890년 1월28일, 인천서 창간한 '인천경성격주상보(仁川京城隔週商報)'의 발간사 일부다. 게재 내용이 오늘의 '경제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돋보이는 이 신문은 인천언론사 전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비록 일본인에 의해 발행된 것이지만 신문물의 총아였던 '신문(新聞)'을 싫든 좋든 인천의 지식인들에게 학습하게 한 공로가 있고 훗날 '조선신문'이란 이름으로 서울.. 2023. 5. 20. 이전 1 ··· 4 5 6 7 8 9 10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