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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문화/인천의영화이야기

조선영화 발달사

by 형과니 2023. 7. 1.

조선영화 발달사 /

나운규,심일선으로부터 문예봉,심영등의 名優에 이르기까지 20년간의 조선 영화발달사

 

知識 ,知慧 ,生活/옛날공책

2019-04-29 22:06:03

 

羅雲奎, 申一仙으로부터 文藝峰 沈影 等名優에 이르기까지의 二十年間朝鮮 映畵 發達史

 

 

잡지명 삼천리 제12권 제5

 

발행일 19400501

 

기사제목 朝鮮文化 及 産業博覽會, 映畵篇

 

 

朝鮮文化 及 産業博覽會, 映畵篇

 

作名 旅路, 春香傳

 

 

朝鮮영화사는 內地支那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활동사진의 수입으로부터 시작된다. 明治 36년경 東京 흥행업자 吉澤商會의 손을 거처서 수입 공개된 英米煙草會社의 선전 필림이 그 효시라고 한다. 그러나 흥행물로서 활동사진이 등장한 것은 明治 41년부터 光武臺에서였고, 본격적으로 상설 흥행된 것은 역시 大正 초엽 이후이다. 종류는 물론 최초엔 사진물로 佛蘭西의 파티이 단편. 亞米利加의 뿌류--스 희극, 유니바-살 장편 등의 외국물과, 내지의 신파물이였다. 이것은 아마 내지와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이것이 소위 변사와 악대로 된, 옛 추억이 새로운 활동 사진관 시대이다. 이 시대는 상설관도 京城5, 6개소, 지방 대도시에 4, 5개소, 그리고 비상설관 등을 모두 합해서 보급 정도도 매우 저열하였다. 이 때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직 영화라고 하는 述語조차 생기지 않은 시대여서 필림은 단지 활동하는 사진으로써 재미의 대상에서 지나지 못했다. 이런 상태는 朝鮮만이 아니고 내지나 원산지인 외국에서도 동일했던 모양이다. 필림이 예술이라고는 누구나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영화사에서 말하는 활동사진시대를 서양이나 내지에서는 제작하야 보았지만 우리 朝鮮은 전혀 보기만 하는 한 편이었다.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면 朝鮮 영화사에는 활동사진시대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보기만 하고 만들지 않는 역사는 없다. 역사는 언제나 만드는 일과, 되여지는 일의 역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朝鮮에 있어서 엄밀한 의미의 영화사는 당연 제작의 개시부터 시작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朝鮮에서는 언제부터 영화의 제작이 시작되였다하면 大正 7, 8년도에 극단에서 만든 連鎖劇 필림부터다. 新劇座, 革新團, 文藝團 등이 東京서부터 기사를 불러서 역시 내지의 신파 연쇄극을 모방하여 연극 사이 사이에 연극과 연결해 보인 것이다.

 

예전 사이렌트시대에 크랑크를 쥐고 있었고, 지금은 녹음 기술을 하고 있는 李承雨씨 같은 이가 벌서 이 시대의 연쇄극 필림 촬영자였었다.<226>

 

그러나 연쇄극 필림을 우리는 곧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독립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영화의 태생에 지나지 않는다.

 

大正 9년도에 이르러서 聚星座金陶山 일행이 京畿道廳의 위탁으로 만든 호열자예방 선전영화와, 10尹白南씨가 체신국 의뢰로 만든 저축사상장려영화 月下盟誓가 완전한 朝鮮영화의 효시이다.

 

그러나 이 2 작품으로 말하드래도 연쇄극 필림 정도는 아니지만 완전히 독립한 영화라고는 하기 어렵다. 전자가 만일 연극의 부속물이라면, 후자는 선전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朝鮮 영화사를 말하매, 후자를 최초의 작품으로서 枚擧하는 것은 그 작품의 내용은 어떻든지, 다른 예술의 수단을 빌지 않고 영화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좀 더 완전한 영화가 되기는 大正 11黃金座朝鮮 劇場을 경영하던 흥행사 早川某東亞文化協會의 명의로 만든春香傳이다. 이 영화에는 당시 인기있는 변사였던 金肇盛이 출연하여 관객의 환영을 받았다.

 

원작이 유명한 春香傳인 관계도 있었고, 또 대중적 장소에 처음으로 스크린에 비치는 朝鮮의 인물과 풍경을 보는 진미가 더하여 흥행에는 성공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釜山朝鮮キネマ株式會社라고 하는 公稱 자본 200,000원의 내지인 기업 회사가 생겨서 安鍾和, 李月華, 출연의 바다의 秘曲, 尹白南감독의 雲英傳등의 작품을 내였지만 회사는 기업적으로 되지 않았다. 朝鮮영화를 대규모 기업의 대상으로 하기에는 시기 상조였던 것이다.

 

요컨데 저들은 誤算한 것이다.

 

작품은 春香傳」 「雲英傳이 고대 소설의 영화화된 의미에서 동일하였고, 바다의 秘曲은 연애극이오, 은 현대극으로 朝鮮의 인정 풍속을 영화로 본다는 것 이상에 지나지 않었다.

 

그러나 이 회사로부터, 초창기 朝鮮영화계의 柱石이 된 尹白南, 安鍾和, 李慶孫, 羅雲奎, 南宮雲, 李月華, 鄭基鐸<227> 등의 인재를 낸 것은 잊지 못할 공적이다.

 

그 후, 尹白南씨가 독립 푸로덕슌을 京城에 창립하여, 李慶孫감독, 羅雲奎주연의 沈淸傳을 지었다가 해산하였으나 이 작품으로부터 朝鮮영화가 조금 확실한 길에 들어가는 감을 느낀다.

 

같은 고대소설을 영화화해도 春香傳이나 雲英傳보다는 퍽 나을뿐더러 이 영화는 감독으로서의 李慶孫씨와 좋은 연기자로서의 羅雲奎씨를 세상에 보낸 기념할 만한 작품이다.

 

그 후, 李弼雨씨가 당시 朝鮮에 남아 있던 연재 만화 멍텅구리를 영화화하였고, 高麗映畵製作所라는 곳에서 신파소설 雙玉淚를 만들고, 또 전기의 東亞文化協會에서 기생 康明化實記 悲戀曲興夫傳등을 만들었으나 모두 부족한 점이 많았다. 흥행사의 돈벌주의와 열심있는 영화인들의 맹목적 시험이 지나지 않았다.

 

李慶孫씨가 尹白南푸로덕슌의 宋仁奎, 南宮雲, 金靜淑을 시켜서 지은 李光洙씨의 소설 開拓者의 영화화도 또 실패하였다.

 

계속하여 신소설의 작자도, 內地 신파소설 등의 번안자로서 초창기 朝鮮문단의 공로자였던 趙一齋씨가 鷄林映畵協會를 일으켜 金色夜叉를 번안 長恨夢을 제작하였고, 두 번째 尹白南감독으로 朝鮮서 처음으로 내지풍의 活劇調 시대극을 만들었으나 모두 성공을 보지 못했다. 더욱이 후자는 흥행에도 전연 실패하여 이후 타인을 시켜서 활극조 시대극이라는 것을 만들 욕심을 아주 버리게 하였다.

 

이 협회가 의의가 있다고 하며는 朝鮮키네마회사 이후 가장 많은 그리고 오래 계속되여 거의라고 하여도 좋으리만치 朝鮮 영화계의 인재를 기르고 있은 점이다.

 

이 시대는 조선영화사로 말하면 푸로덕슌 창립 시대로 영화를 제작한 이외에도 京城 시내를 산책하면 곳곳이 XX푸로덕슌, XX영화제작소라는 간판을 볼 수 있는 시대였다. 영화에의 정서가 비상하게 팽창했던 시대다. 그러나 작품으로 이렇다 할 만한 것이 남았고, 그저 돈만 있으면 어쨋든 제작! 제작!하며, 배우와 감독이 되려고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였었다.

 

그러나 이 시대가 朝鮮영화사의 토대를 쌓아 올라가고 있은 시대였다.

 

외국에서는 활동사진시대를 거처서 예술로서의 영화시대가 시작되는 시대였고, 朝鮮영화는 중 맹목적 시험으로부터 점차로 어떤 방향이 보이려고 하는 시대였었다.

 

朝鮮 영화를 참다운 영화답게 하고, 朝鮮영화다운 영화를 만들기는 大正 15羅雲奎의 원작, 감독, 주연인 아리랑의 상영부터다. 이 작품은 本町 某 상인이 출자하여서 된 朝鮮키네마푸로덕슌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만들기 전 朝鮮키네마푸로덕슌은 당시 내지에서 유행가로 영화로 대인기를 점령하고 있든 籠中鳥津守等감독에 李奎卨주연 羅雲奎조연으로 만들었지만 이 작품은 이전 朝鮮영화보다 100보나 진보된 작품으로<228> 朝鮮키네마푸로덕슌이라는 것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였고 羅雲奎라는 배우의 존재를 확실히 세상에 인식시킨 공적이 있었다.

 

이러한 경로로 두 번째 만든 아리랑은 절대 인기를 하여 흥행 성적이 후년에 이르기까지 좋았을 뿐더러 朝鮮영화사상 사이렌트시대 최대의 걸작이 되였다.

 

이 작품에는 치졸하지만 朝鮮 사람들의 생활 그것과, 감정, 사상, 기분의 진실성의 일단이 잘 표현되여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단순한 조선인 풍경, 인물 풍속 이상의 그 무엇을 본 것이다. 거기에는 물건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이 작품의 성공은 또, 그 내용에 그칠 뿐 아니라 기술상으로 보드래도 재래의 모든 朝鮮 영화의 수준을 돌파하였다. 이만하면 단순히 호기심에 끌리여 보는 이외에 자미와 어떤 무엇을 얻고저 안심하고 기대하면서 보게쯤 되였다.

 

이 작품을 통하여 一世 대인기의 女優 申一仙이 세상에 나타났다.

 

이 작품이 발전된 시기가 마침 관객들이 벌서 朝鮮의 인물이며 풍경이며, 풍습이 나온다고 덮어 놓고, 朝鮮영화를 볼 수 없게 되게 된 때이여서 매우 찬받고 환대를 받았다.

 

그 다음이 風雲兒」 「野鼠」 「금붕어등 계속하여 호조를 보였으며 羅雲奎의 지위는 벌서 朝鮮영화계의 중심이 되였다. 그는 아리랑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기 배우만이 아니고 좋은 씨나리오작가였으며, 보다도 좋은 연출자였다.

 

이 몇 해 동안을 羅雲奎 시대라고 이름 지어도, 좋으리만치 되였다. 사실 사이렌트시대에 朝鮮 영화계에는 羅雲奎보다 나은 영화작가는 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을지 모르나 나는 朝鮮영화의 사이렌크시대를 羅雲奎시대라고 하고 싶다.

 

昭和 6년에 오랫동안 쉬고 있던 鷄林映畵協會가 시인 沈薰의 원작 감독으로 먼동이 틀 때姜弘植, 申一仙의 주연으로 제작하에 朝鮮영화사상 드믈게<229> 보는 양심적 제작 태도를 보였다. 이 작품은 확실히 아리랑과 같이 기억해 둘 만한 작품이다.

 

그와 전후하여 李圭离씨가 제작한 不忘曲, 紅戀悲戀, 極東키네마의 怪人正體大陸키네마의 支那街秘密, 朝鮮映畵製作所運命, 其外 몇몇 가지가 있으나 별로 언급할 정도는 못 된다.

 

그 중 平壤키네마에서 李慶孫씨가 감독한 椿姬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昭和 2년경 상설관 團成社 영화부에서 당시 변사였던 金永煥씨가 落花流水」 「종소래」 「세 동무등을 제작하여 관객을 끌었으나 이것을 아즉 俗化하여 상업주의화한 작품이었다.

 

이 시대에 羅雲奎씨는 朝鮮키네마를 그만 두고 독립 개인 푸로덕슌을 가지고, 잘 있거라」 「玉女」 「사나이」 「사랑을 찾아서」 「벙어리 三龍등을 제작하여 자기의 작품 성격을 유지하였지만 당시 영화계의 일부에서는 경향 영화에의 경향이 생겼다.

 

이것은 安鍾和씨가 주재하고 있던 朝鮮영화예술협회의 젊은 멤버-들과 좌익 문화인과의 합류로 流浪」 「昏街그 다음의 火輪등을 만들었다. 이것은 故 金幽影씨의 작품이였다. 여기에 비하면 씨의 작품은 자못 민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昭和 3년부터 5, 6년경까지의 朝鮮영화의 상황인데 일종 내적 분열시대이여서 新興畵藝術同盟이라는 단체가 생기기도 하고, 갚프영화부가 생기기도 하여 徐光霽씨 등으로 인하여 朝鮮에 처음으로 영화비평과 평론이 생긴 것도 이 시기다.

 

昭和 8, 9년경부터 羅雲奎씨도 스텝풀어 떨어저 여러 가지의 작품을 만들었으나 朝鮮영화는 도모지 진보하는 形跡이 보이지 않았다.

 

씨의 七番通小事件, 鍾路등은 아리랑에 비하면 말도 할 수 없는 愚作이며 아리랑2. 3편도 그러한 것이었다.

 

安鍾和씨가 메가폰을 듣기 시작하여 꽃장사」 「銀河에 흐르는 情熱」 「靑春十字路등을 제작하고, 中央영화사 方漢駿씨가 撤水車를 제작하였으며 李圭煥씨가 임자 없는 나룻배」 「바다여 말하라, 朴基采씨가 春風을 제작하였지만 모두 새로운 시기를 지을 만한 작품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3, 4년 침체 후 昭和 9년 경부터 朝鮮영화는 재건기에 들어가는 감이 있어서 기술적으로 아주 새로운 시기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감독도 尹白南, 李慶孫, 羅雲奎와 같은 사람들은 제1선으로부터 퇴각하고 李圭煥, 方漢駿, 朴基采, 尹逢春 등 신인들이 등장하였으며, 安鍾和씨가 연극으로부터 다년간 放棄하였던 영화 진출을 하였다.

 

또 배우에도 沈影, 金漢, 獨銀麒, 田澤二, 金一海 男優, 文藝峯, 金素英, 金信載, 玄舜英 女優에게서 보여지는 바대로 새로운 제네레슌이 성장했다.

 

요컨대 昭和 8, 9년간의 朝鮮영화계는 사이렌트시대의 말기였었고 토-키시대를 맞으려고 속으로 초조하였던 시대였다.<230>

 

당시의 조선 영화에 지워진 임무는 하로- 바삐 사이렌트시대에서 탈출하여야 할 일이있다.

 

이 때는 벌서 외국 영화 뿐만 아니라 내지 영화도 완전히 토-키시대에 들어간 때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괴로운 시련을 받은 사람들이 토-키로 된 今日朝鮮영화계를 형성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인 것을 생각하면 실로 감회가 깊을 것이다.

 

 

 

최초의 朝鮮-키는 昭和 10京城촬영소에서 李弼雨, 李明雨 형제가 제작한 春香傳이다. 이 영화를 통하여 朝鮮語가 처음으로 필림에 녹음되여진 모양이다. 영화는 자못 환영을 받았다. 그것은 초기의 朝鮮영화(사이렌트)가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朝鮮의 토-키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其後 京城촬영소에서는 洪開明씨의 아리랑고개, 李明雨씨의 薔花紅戀傳, 洪吉童, 漢陽영화사에서는 아리랑 3이 토-키로 제작되였지만 벌서 사람들은 토-春香傳을 보는 것과 같은 관대함을 가지고 임하지 못했다.

 

 

 

단순한 토-키가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외국이나 내지의 작품 수준에 접근치 않으면 아니 되였다.

 

이러한 귀중한 시기에 李圭煥씨는 鈴木重吉씨와 같이 旅路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이 어느 정도까지가 朝鮮人의 작품인지는 판단키 어렵지만 朝鮮의 토-키를 반석 우에 세운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아리랑을 볼 때와 같이 기뻐했다. 여러 가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今日까지 토-키로 된 이후의 朝鮮영화 중 가장 우량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사이렌트 아리랑을 성공시킨 것과 같이 旅路를 성공시킨 것도 리알리즘이었다. 이 내용이 아무리 수긍키 어려운 때라도 작자가 생활의 진실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이다.

 

이 밖에 당시까지 朝鮮에서는 토-<231> 외에 아직 사이렌트가 제작되여, 安鍾和씨의 人生航路, 申敬均씨의 純情海峽, 洪開明씨가 漢陽영화사에서 지은 靑春部隊를 최후로 사이렌트는 완전히 朝鮮영화에서 자최를 감추었다. 때는 昭和 12년이었다.

 

 

 

이 해에 기록할 만한 작품으로서는 화가 安夕影씨가 紀新洋行에서 제작한 沈淸으로 이 작품에 있어서 씨는 회화적인 아름다움과, 고대소설을 영화화하는데 새로운 機軸을 보였다.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토-키시대가 시작되여 제작도 왕성하여젔다. 方漢駿씨의 漢江, 尹逢春씨의 圖生錄, 평론가 徐光霽씨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사용한 軍用列車등 계속하여 발표되였다.

 

 

 

이때로부터 朝鮮영화에 있어서 기업화의 운명이 시작되여서 朝鮮영화 회사가 설립되여 제1회 작품으로 朴基采씨가 無情, 李圭煥씨가 出發을 제작하였다.

 

 

 

-키는 사이렌트와 달라서 막대한 생산비가 필요하며, 또 조직적인 생산 슈템을 갖지 않으면 朝鮮영화의 이 이상의 발전은 염려되는 바 아무래도 큰 기업적 조직이 필요하다.

 

 

 

하지만 朝鮮영화는 2회작을 내놓을 뿐 기업 기관으로써 움직이지 못하게 되여, 흡사히 4, 5년 전의 畵界가 하루 바삐 사이렌트시대에서 탈출할 것을 과제로 삼든 것처럼 금일의 토-키는 하루 바삐 소규모 제작의 상태를 탈출해야 할 것이 또 과제가 되지 않았나하고 생각된다.

 

 

 

其後 安哲永씨가 漁火, 金幽影씨가 劇硏座 영화부에서 愛戀頌, 東洋劇場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등을 제작하고 方漢駛씨가 城隍堂, 漢陽 映畵社歸着地, 崔寅圭씨 등의 國境제작되였지만 모두 에포-크를 만들 作名은 없었다.

 

 

 

단지 朝鮮의 감독들이 현저히 기술 편중에 빠저 전혀 職工이 되려고 하여가는 기풍이 보였다.

 

이것은 昨日 사이렌트시대를 나온 朝鮮영화로서 爲先 새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아니 될 사정을 생각할 때 一應 긍정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朝鮮영화가 하루 바삐 이 상태에서 버서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일도 보다 크게 진실하다.

 

현재 제작 중으로 발표되지 않은 高麗映畵社에서 全昌根씨가 3년 계획으로 제작하는 대작 福地 萬里, 崔寅圭, 方漢駛씨의 授業料, 金幽影씨의 유작 水仙花, 申敬均씨의 處女圖, 安夕影씨의 志願兵, 漢陽 映畵社新開地등이 있다.

 

여하간 자기의 모랄의 획득과 기업화에의 길이 朝鮮영화 금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광수 저

 

반도강산, 정가 25

 

발행소 弘智出版社<232>

 

 

 

 

 

一年間 演劇. 映畵 觀覽客入場料

 

 

 

총독부의 조사에 의하면 昭和 13년도 연극장, 영화관, 경마장, 마작장, 당구장 등의 총 입장한 인원수가 18,080,707인이오, 총 입장료가 5,878,876원이였다. 이 중에서 영화관 입장자가 12,501,300인이오, 그 입장료가 3,894,900원이여서 거의 전체의 과반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연극장 입장자는 1,092,200인이오, 입장료는 566,500원이였다. 끝으로 참고로 당구장 입장은 2,398,700(입장료는 542,000)이오, 연예장 입장자는 1,470,559(701,400)이다.<227>

 

 

 

 

 

主要 映畵社 及 製作所

 

 

 

朝鮮映畵株式會社 사장 崔南周제작부장 李載明, 鍾路 3丁目 33 (電光 3144) 촬영소 京元線 議政府

 

高麗映畵會社 사장 李創用, 鍾路 2丁目 7 (電光 780, 2617)

 

漢陽映畵社 사장 金甲起 鍾路, 2丁目 漢陽 ビル(電光 1600)

 

半島映畵製作所 대표 方漢駿, 鍾路 2丁目 7 (電光 780)

 

劇硏座 영화부 徐恒錫, 苑南町 160

 

朝鮮文化映畵協會 대표 河通男, 南山町 3丁目 19

 

기타 현재 활동休止하고 있는 極光映畵社, 金剛키네마 등이 있다.<229>

 

 

 

 

 

主要 演劇場定員

 

 

 

京城府

 

 

 

場名 町名 정원

 

 

 

明治座 明治町 1,500

 

若草映畵劇場 若草町 1,200

 

黃金座 黃金町 1,236

 

大陸劇場 授恩町 850

 

浪花舘 明治町 650

 

京龍舘 漢江通 750

 

東洋劇場 竹添町 800

 

 

 

大邱府

 

新興舘 田町 1,000

 

萬鏡舘 京町 850

 

永樂舘 田町 800

 

 

 

仁川府

 

瓢舘 新町 670

 

愛舘 京町 800

 

 

 

平壤府

 

大衆映畵劇場 櫻町

 

偕樂舘 壽町 1,200

 

平壤키네마 櫻町 538

 

 

 

釜山府

 

相生舘 本町 900

 

寶來舘 幸町 800

 

昭和舘 幸町 1,100 <231>

 

 

 

 

 

 

 

20年間 作品 製作 年代記

 

 

 

작품명 연대 기획자

 

 

 

1, 月下盟誓(大正 10, 1921) 朝鮮總督府遞信局

 

감독 尹白南·촬영 太田同

 

출연 李月華, 權一淸

 

2, 春香傳(大正 11, 1922) 東亞文化協會

 

감독 早川松治郞·촬영 미상

 

출연 *, 崔泳完

 

3, 秘曲(大正 12, 1923) 釜山朝鮮키네마株式會社

 

감독 高佐·촬영 須藤

 

출연 安鍾和, 李月華, 李周璟, 李彩田

 

4, 薔花紅蓮傳(大正 13, 1923) 京城團成社

 

감독 金永煥·촬영 李弼雨

 

출연 崔炳龍, 禹定植, 申綿紅

 

5, 悲戀(大正 13, 1924) 東亞文化協會

 

감독 早川松治郞·촬영

 

출연 *, 文秀一

 

6, 雲英傳(大正 13, 1924) 釜山朝鮮키네마株式會社

 

감독 尹白南·촬영 宮下

 

출연 安鍾和, 金雨燕, 李周璟

 

7, (大正 13, 1924) 釜山朝鮮키네마株式會社 (검열 각하)

 

감독 高佐貫長·촬영 西川秀洋

 

출연 兪守晙, 李彩田

 

8, 雙玉淚(大正 14, 1925) 高麗映畵製作所

 

감독 李龜永·촬영 李弼雨

 

출연 金少珍, 趙天星

 

9, 雙玉淚後篇(大正 14, 1925) 高麗映畵製作所

 

감독 李龜永·촬영 李弼雨

 

출연 金少珍, 趙天星

 

10, 沈淸傳(大正 14, 1925) 尹白南푸로덕슌

 

감독 李慶孫·촬영 西川秀洋

 

출연 羅雲奎, 朱仁奎, 朱三孫, 李圭*, 崔德先

 

 

 

11, 동내의 호걸(大正 14, 1925) 釜山朝鮮키네마株式會社

 

감독 高佐貫長·촬영 李周漢

 

출연 兪守晙

 

12, 흥부 놀부(大正 14, 1925) 東亞文化協會

 

감독 早川松治郞·촬영

 

출연 文秀一, 崔泳完, *<233>

 

13, 開拓者(大正 14, 1925) 尹白南푸로덕슌

 

감독 李慶孫·촬영 西川秀洋

 

출연 金靜淑, 南宮雲, 朱仁奎, 鄭基澤

 

14, (大正 14, 1925) 金澤潤映畵社

 

감독 金澤潤·촬영 西川秀洋

 

출연 金澤潤, 羅雲奎

 

15, 長恨夢(大正 14, 1924) 鷄林映畵協會

 

감독 李慶孫·촬영 西川秀洋

 

출연 姜弘植, 朱三孫, 金靜淑, 沈薰, 鄭基澤, 羅雲奎

 

16, *(大正 14, 1924) 鷄林映畵協會

 

감독 李慶孫·촬영 西川秀洋

 

출연 李白水, 南宮雲, 姜弘植, 鄭基澤, 金靜淑

 

17, 籠中鳥(大正 15, 1925) 朝鮮키네마

 

감독 李圭卨·촬영 加藤恭平

 

출연 李圭卨, 卜惠淑, 羅雲奎

 

18, 아리랑(昭和 원년, 1926) 朝鮮키네마

 

감독 羅雲奎·촬영 加藤恭平

 

출연 羅雲奎, 朱仁奎, 申一仙, 南宮雲

 

19, 風雲兒(昭和 원년, 1926) 朝鮮키네마

 

감독 羅雲奎·촬영 加藤恭平

 

출연 羅雲奎, 朱仁奎, 林雲鷄, 金靜淑, 南宮雲

 

20, 鳳凰의 면류관(昭和 원년, 1926) 鄭基澤푸로덕슌

 

감독 李慶孫·촬영 韓昌燮

 

출연 鄭基澤, 姜香蘭, 申一仙

 

 

 

21, 먼동이 틀때(昭和 2, 1927) 鷄林映畵協會

 

감독 沈薰·촬영 濱田

 

출연 姜弘植, 申一仙, 韓炳龍, 金靜淑

 

22, 落花流水(昭和 2, 1927) 金剛키네마

 

감독 金永煥·촬영 李明雨

 

출연 卜惠淑, 李源鎔

 

23, 들쥐(昭和 2, 1927) 朝鮮키네마

 

감독 羅雲奎·촬영 加藤恭平

 

출연 申一仙, 朱三孫. 羅雲奎, 尹逢春

 

24, 不忘曲(昭和 2) 德永푸로덕슌

 

감독 李圭卨·촬영 太田同

 

출연 李圭卨

 

25, 洛陽의 길(昭和 2) 朝鮮券番

 

감독·촬영 李弼雨

 

출연 朝鮮券番妓生

 

26, 樂園을 찾는 무리(昭和 3) 極東키네마

 

감독 黃雲·촬영 李弼雨

 

출연 南宮雲, 全玉, , 朱仁奎, 林雲鷄<234>

 

27, 금붕어(昭和 2) 朝鮮키네마

 

감독 羅雲奎· 촬영 加藤恭平

 

출연 羅雲奎, 尹逢春, 金靜淑, 申一仙, 鄭基澤

 

28, 怪人正體(昭和 2) 極東키네마

 

감독· 촬영 宮川

 

출연 金哲山, 申一仙

 

29, 紅戀悲戀(昭和 2) 德永푸로덕슌

 

감독 李圭卨· 촬영 太田同

 

출연 李圭卨

 

30, 잘있거라(昭和 2) 羅雲奎푸로덕슌

 

감독 羅雲奎· 촬영 李創用

 

출연 羅雲奎, 朱三孫, 李慶善, 尹逢春, 全玉

 

 

 

31, 뿔빠진황소(昭和 2) 朝鮮키네마

 

감독 金兌鎭· 촬영 加藤恭平

 

출연 朱仁奎, 金斗玉, 李圭卨, 安錦紅

 

32, 運命(昭和 2) 朝鮮映畵製作所

 

감독 金海雲· 촬영 李明雨

 

출연 徐月影, 曹海英, 金靜淑

 

33, 玉女(昭和 3) 羅雲奎푸로덕슌

 

감독 羅雲奎· 촬영 李創用

 

출연 羅雲奎, 朱三孫, 全玉, 尹逢春

 

34, 나의친구(昭和 3) 大陸키네마

 

감독 川端基水. 촬영 西川秀洋

 

출연 羅雄, 徐月影, 朴齊行

 

35, 再活(血魔) (昭和 3) 高麗映畵製作所

 

감독 洪開明· 촬영 李弼雨

 

출연 安錦香, 李素然

 

36, 故鄕(昭和 3) 서울映畵

 

감독 安鍾和· 촬영 宮川

 

출연 張惠順

 

37, 멍텅구리(昭和 3) 半島키네마

 

감독 李弼雨· 촬영 李弼雨

 

출연 安細民

 

38, 流浪(昭和 3) 朝鮮映畵藝術協會

 

감독 金幽影· 촬영 閔又洋

 

출연 林和, 趙敬姬, 徐光霽

 

39, 사랑을찾어서(昭和 3) 羅雲奎푸로덕슌

 

감독 羅雲奎· 촬영 李創用

 

출연 羅雲奎, 尹逢春, 李錦龍, 全玉, 李慶孫

 

40, 支那街秘密(昭和 3)

 

감독 柳長安· 촬영 西川秀洋

 

출연 羅雄, 全斗玉<235>

 

 

 

41, 椿姬(昭和 3) 平壤키네마

 

감독 李慶孫· 촬영 孫勇進

 

출연 鄭基澤, 金一松

 

42, 세동무(昭和 3) 金剛키네마曙光키네마 합동제작

 

감독 金永煥· 촬영 李明雨

 

출연 李源鎔, 金蓮實, 卜惠淑

 

43, 종소리(昭和 3) 金剛키네마

 

감독 李平· 촬영 李弼雨

 

출연 李源鎔, 金蓮實, 李慶善

 

44, 사나이(昭和 3) 羅雲奎푸로덕슌

 

감독 羅雲奎· 촬영 孫勇進

 

출연 羅雲奎, 柳新芳, 洪開明, 尹逢春

 

45, 淑英娘子傳(昭和 3) 李慶孫푸로덕슌

 

감독 李慶孫· 촬영 韓昌燮

 

출연 趙敬姬, 朴昌赫, 金昌洙

 

46, 昏街(昭和 3) 서울키노

 

감독 金幽影· 촬영 孫勇進

 

출연 林和, 南宮雲, 李英愛

 

47, 暗路(昭和 3) 南陽키네마

 

감독 姜湖· 촬영 閔又洋

 

출연 姜湖

 

48, 벙어리三龍(昭和 4) 羅雲奎푸로덕슌

 

감독 羅雲奎· 촬영 孫勇進

 

출연 羅雲奎, 朱三孫, 尹逢春, 柳新芳

 

49, 約婚(昭和 4) 中央키네마

 

감독 金永煥· 촬영 李創用

 

출연 羅雄

 

50, 젊은이의노래(昭和 4) 朝鮮劇場映畵部

 

감독 金永煥· 촬영 孫勇進

 

출연 羅雄, 朴齊行, 金靜淑, 尹逢春, 徐月影

 

 

 

51, 아리랑後篇(昭和 5) 圓方角社

 

감독 羅雲奎· 촬영 李明雨

 

출연 羅雲奎, 南宮雲, 柳新芳, 尹逢春

 

52, 꽃장사(昭和 5) 朝鮮映畵社

 

감독 安鍾和· 촬영 李明雨

 

출연 崔南周, 金明淳

 

53, 悔心曲(昭和 5) 亞星키네마

 

감독 王德星· 촬영 李進權

 

출연 金亞星, 李圭卨, 姜貞愛, 金寶信, 尹逢春

 

54, 鐵人都(昭和 5) 圓方角社

 

감독 羅雲奎· 촬영 李弼雨

 

출연 羅雲奎, 朴齊行, 金蓮實<236>

 

55, 僧房悲曲(昭和 5) 東洋映畵社

 

감독 李龜永· 촬영 李明雨

 

출연 李慶善, 金蓮實, 尹逢春

 

56, 正義는이긴다(昭和 5) 東亞日報社

 

감독 尹白南· 촬영

 

출연

 

57, 朴文秀傳(昭和 5)

 

감독 李錦龍· 촬영 李鎭權

 

출연 李錦龍, 韓昌煥, 玄極

 

58, 노래하는시절(昭和 5) *키네마

 

감독 安鍾和· 촬영 太田同

 

출연 尹逢春, 咸春纂, 李愛蓮

 

59, 지지마라 順伊(昭和 5) 太陽키네마(미완)

 

감독 金兌鎭· 촬영 加藤恭平

 

출연 金斗玉, 金靜淑, 朱三孫, 李圭卨

 

60, 도적놈(昭和 5) 大東映畵社

 

감독 尹逢春· 촬영 李進權

 

출연 尹逢春, 石修羅, 朱仁奎, 河小楊

 

 

 

61,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昭和 6) 綠星키네마

 

감독 梁哲· 촬영 孫勇進

 

출연 羅雄, 朴齊行, 金蓮實, 徐月影

 

62, 地下村(昭和 6) 靑服키네마(미완)

 

감독 姜湖· 촬영 閔文洋

 

출연 林和, 李鶴來, 李貴禮, 李圭卨

 

63, 金剛恨(昭和 6) 遠山푸로덕슌

 

감독 島田章, 春史. 촬영 李創用

 

출연 遠山滿, 小原小春, 羅雲奎

 

64, 驚備(昭和 6) 遠山푸로덕슌

 

감독 島田章· 촬영 男澤

 

출연 遠山滿, 小原小春

 

65, 큰무덤(昭和 6) *키네마

 

감독 朴潤洙· 촬영 太田同

 

출연 尹逢春, 朴潤洙, 河小楊, 金英纂

 

66, 火輪(昭和 6) 서울키노

 

감독 金幽影· 촬영 閔文洋

 

출연 金蓮實, 白河路, 石一良, 金靜淑

 

67, 守一順愛(昭和 6) 大京映畵洋行

 

감독 李龜永· 촬영 李明雨

 

출연 李慶善, 金蓮實, 朴齊行, 沈影, 尹逢春

 

68, ルンペン何處(昭和 6) 遠山푸로덕슌

 

감독 島田章· 촬영 男澤

 

출연 遠山滿, 小原小春<237>

 

69, 방아타령(昭和 6) 新興푸로덕슌

 

감독 金尙鎭· 촬영 李明雨

 

출연 李慶善, 金素英, 沈影, 金寅圭

 

70, 開化黨異聞(昭和 7) 柳新키네마

 

감독 羅雲奎· 촬영 孫勇進

 

출연 羅雲奎, 尹逢春, 林雲鶴

 

 

 

71, 딱한사람들(昭和 7) 길안든映畵社

 

감독 黃雲· 촬영 黃雲

 

출연 朱仁奎, 李炳逸

 

72, 임자없는나루 배(昭和 7) 柳新키네마

 

감독 李圭煥· 촬영 李明雨

 

출연 羅雲奎, 林雲鶴, 文藝峯

 

73, 鐘路(昭和 8) 大邱映畵撮影所

 

감독 梁哲· 촬영 李信雄

 

출연 羅雲奎, 金蓮實, 朴昌赫, 林雲鶴

 

74, 도라오는 靈魂(昭和 8) 西鮮키네마

 

감독 李舜· 촬영 李昌根

 

출연 羅星, 高天翼, 任熙淑, 崔松甲, 李花峯

 

75, 七番通 小事件(昭和 9) 朝鮮映畵社

 

감독 羅雲奎· 촬영 孫勇進

 

출연 羅雲奎, 林雲鶴, 孫一平

 

76, 靑春十字路(昭和 9) 金剛키네마

 

감독 安和鍾· 촬영 李明雨

 

출연 李源鎔, 朴淵, 申一仙, 金蓮實

 

77, 아름다운 犧牲(昭和 9)

 

감독 金光州· 촬영 李信雄

 

출연 李慶善, 金鮮英, 沈影, 朴齊行

 

78, 前科者(昭和 9) 京城撮影所

 

감독 金蘇峰· 촬영 李弼雨

 

출연 李慶善, 金蓮實, 李素然, 石一良

 

79, 春香傳(發聲) (昭和 10) 京城撮影所

 

감독 李銘中· 촬영 李明雨

 

출연 文藝峯, 盧載信, 林雲鶴, 韓一松, 李鍾哲

 

80, 바다여 말하라(昭和 10) 靑鳥映畵社

 

감독 李圭煥· 촬영 李明雨

 

출연 沈影, 玄舜英, 徐月影, 金寅圭

 

 

 

81, 아리랑 三篇(發聲) (昭和 10) 漢陽撮影所

 

감독 羅雲奎· 촬영 李信雄

 

출연 羅雲奎, 田澤二, 車相銀, 申一俳, 尹逢春

 

82, 大盜傳(昭和 10) 京城撮影所

 

감독 金蘇峯· 촬영 李明雨

 

출연 金振文, 玄舜英, 李慶善, 金寅圭<238>

 

83, 撒水車(昭和 10) 朝鮮中央映畵社

 

감독 方漢駿· 촬영 孫勇進

 

출연 金成春, 朴齊行, 金一海

 

84, 洪吉童傳(昭和 10) 京城撮影所

 

감독 李銘中· 촬영 李明雨

 

출연 金蓮實, 李素然, 金寅圭, 金振文, 崔雲峰

 

85, 無花果(昭和 10) 朝鮮키네마

 

감독 羅雲奎· 촬영 李信雄

 

출연 羅雲奎, 尹逢春, 玄芳蘭, 吉蘭是也

 

86, 銀河에 흐르는 情熱(昭和 10) 金剛키네마

 

감독 安鍾和· 촬영 李明雨

 

출연 李源鎔, 申一俳, 李慶善, 沈影, 金寅圭

 

87, 건너 마을(昭和 10) 漢陽映畵社

 

감독 羅雲奎· 촬영 孫勇進

 

출연 尹逢春, 田澤二, 金德心, 車相銀, 玄舜英

 

88, 그림자(昭和 10) 朝鮮키네마

 

감독 羅雲奎· 촬영 李信雄

 

출연 羅雲奎, 玄芳蘭, 林生員, 尹逢春, 李福來

 

89, 春風(昭和 10) 映畵時代社

 

감독 朴基釆· 촬영 梁世雄

 

출연 文藝峯, 李慶善, 金一海, 卜惠淑

 

90, 그 후의 李道令(昭和 10) 五洋映畵社

 

감독 李圭煥· 촬영 藤井出

 

출연 李晉遠, 獨銀麒

 

 

 

91, 무지개(昭和 10) 嶺南映畵社

 

감독 李圭煥· 촬영 鮮于學

 

출연 金素英, 獨銀麒, 文藝峯, 張斗翰

 

92, 아리랑 고개(發聲) (昭和 10) 京城撮影所

 

감독 洪開明· 촬영 李明雨

 

출연 文藝峯, 慮載信, 柳滅愛, 崔雲峯, 文秀一

 

93, 지은 女子(昭和 10) 西鮮키네마

 

감독 李昌根· 촬영 李昌根

 

출연

 

94, 逆襲(昭和 11) 高麗映畵키네마

 

감독 安鍾和· 촬영 孫勇進

 

출연 李錦龍, 李慶善, 金寅圭, 卜惠淑, 申銀峯

 

95, 都會悲歌(昭和 11) 西鮮키네마 제3회제공

 

감독 林唯· 촬영 李昌根

 

출연

 

96, 迷夢(發聲) (昭和 11) 京城撮影所

 

감독 梁柱南, 金蘇峰. 촬영 黃雲祚

 

출연 羅雄, 金寅圭, 崔雲峰, 文藝峯, 李錦龍<239>

 

97, 純情海峽(昭和 11) *映畵社

 

감독 申敬均· 촬영 梁世雄

 

출연 金一海, 金映王, 金德心, 孫一圃, 權美卿

 

98, 人生航路(昭和 11) 金剛·漢陽 합작

 

감독 安鍾和· 촬영 李信雄

 

출연 李源鎔, 車相銀, 玄舜英, 朴淵, 文藝峯

 

99, 五夢女(發聲) (昭和 11) 京城撮影所

 

감독 羅雲奎· 촬영 李明雨

 

출연 尹逢春, 林雲鶴, 盧載信, 崔雲峯

 

100, 노래 朝鮮(發聲音樂) 오케映畵製作所

 

감독 金尙鎭· 촬영 京城撮影所

 

출연 高福壽, 金海松, 李蘭英, 기타 OK 가수 총출연

 

 

 

101, 洪吉童傳 後篇(發聲) (昭和 11) 京城撮影所

 

감독 李銘午· 촬영 崔雲峰

 

출연 李錦龍, 金寅圭, 羅雄

 

102, 薔花紅蓮傳(發聲) (昭和 12) 京城撮影所

 

감독 洪開明· 촬영 李明雨

 

출연 文藝峯, 池京順, 崔雲峰, 文秀一, 林雲鶴

 

103, 나그내(發聲) (昭和 12) 聖峯新興 합작

 

감독 李圭煥, 鈐木重吉. 촬영 大久保

 

출연 文藝峯, 朴齊行, 王平, 獨銀麒

 

104, 沈淸(發聲) (昭和 12) 紀新洋行

 

감독 安夕影· 촬영 李明雨

 

출연 金素英, 李素香, 金素姬, 曹錫元

 

105, 靑春部隊(發聲) (昭和 13) 朝鮮키네마

 

감독 洪開明· 촬영 李信雄

 

출연 車相銀, 金德心, 玄舜英, 田澤二, 尹逢春

 

106, 漢江(發聲) (昭和 13) 半島映畵製作所

 

감독 方漢駿· 촬영 梁世雄

 

출연 李錦龍, 金一海, 崔雲峰, 尹逢春, 玄舜英

 

107, 軍用列車(發聲) (昭和 13) 聖峰 東寶 합작

 

감독 徐光霽· 촬영 梁世雄

 

출연 文藝峯, 獨銀麒, 佐佐木信子, 王平, 金漢(金寅圭 개명)

 

108, 圖生錄(發聲) (昭和 13) 天一映畵社

 

감독 尹逢春. 촬영 李信雄

 

출연 崔雲峯, 南宮仙, 金信哉, 李錦龍, 金一海

 

109, 漁火(發聲) (昭和 13) 極光映畵製作所

 

감독 安哲永· 촬영 李丙稷

 

출연 朴魯慶, 羅雄, 尹北洋, 田曉峰, 朴學

 

110, 無情(發聲) (昭和 141939) 朝鮮映畵株式會社

 

감독 朴基釆

 

출연 韓銀珍, 李白水<240>

 

(이하 전부 發聲)

 

 

 

111,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昭和 141939) 東洋劇場映畵部

 

감독 李銘牛

 

연출 黃徹, 車紅女

 

112, 歸着地(昭和 141939) 漢陽映畵社

 

감독 李英椿

 

출연 李錦龍, 玄舜英

 

113, 國境(昭和 141939) 高麗映畵社

 

감독 崔寅奎

 

출연 金素英, 崔雲峯

 

114, 愛戀頌(昭和 141939) 劇硏座映畵部

 

감독 金幽影

 

출연 文藝峯, 金治根

 

115, 出發(昭和 141939) 朝鮮映畵株式會社

 

감독 李圭煥

 

출연 文藝峯, 徐月影

 

116, 國旗 下에 죽으리라(昭和 141939) 朝文

 

감독 (불명)

 

출연 (불명)

 

117, 海光(昭和 141939)

 

감독 (불명)

 

출연 (불명)

 

118, 防共(昭和 141939)

 

감독 (불명)

 

출연 (불명)

 

119, 授業料(昭和 151940) 高麗映畵社

 

감독 崔寅奎, 方漢駿, 蒲田硏二

 

출연 文藝峯, 金漢, 崔雲峯

 

120, 志願兵(昭和 151940) 東亞映畵社

 

감독 安夕影

 

출연 文藝峯, 崔雲峯, 李錦龍

 

 

 

121, 福地萬里(昭和 151940) 高麗映畵社

 

감독 全昌根

 

출연 秦薰, 沈影, 朱仁奎, 朴昌煥

 

122, 新開地(昭和 151940) 漢陽映畵社

 

감독 尹逢春

 

출연 李錦龍, 金德心

 

123, 水仙花(昭和 151940) 朝鮮映畵株式會社

 

감독 金幽影

 

출연 文藝峯, 金信哉, 金一海

 

124, 돌쇠(昭和 151940) 京城映畵科學工場

 

감독 李圭煥

 

출연 李化三, 金漢, 獨銀麒, 田澤二<241>

 

125, 處女圖(제작 중) 漢陽映畵社

 

감독 申敬均

 

출연 金漢, 獨銀麒, 徐月影

 

126, 勝利(제작 중) 高麗映畵社 九貴映畵社

 

감독 (불명)

 

출연 (불명)

 

 

 

 

 

朝鮮 主要 演劇 團體俳優 人名

 

 

 

高協

 

沈影朱仁奎金東圭柳玄朴昌煥李載玄高奇峯宋創冠金蓮實盧載信姜寶金宋秋蓮

 

柳誠愛兪慶愛金吉峯金永順李吉宰崔玉善羅雄朴英鎬姜聖範

 

 

 

靑春座

 

卞基鍾李東胡李鍾哲金鐵崔大奎崔明哲金允浩梁在城李軒徐成大金勝鎬韓一松

 

池京順南宮蓮陳賢淑車敬愛趙美鈴池弼順李順趙鮮一李世燕尹信玉

 

 

 

豪華船

 

張陣朴相翊申左峴金滿韓昌愚劉鮮影高雪峯宋隣得任春根鄭麟瑞太乙民全景希

 

朴齊行韓銀珍李白姬鄭惠順申玉峯蔡英福金福子金愛順

 

 

 

阿娘

 

徐一星梁白明金斗燦騎駿林樹葉梁進李夢任士滿孟晩植黃澈朴永信崔銀燕

 

文貞福崔承伊李正順金仙草嚴美花林仙圭元雨田金敬淑白恩善金得昌安健煥

 

 

 

協同藝術座

 

安基錫金承久李化三姜魯石朴東和李炳學李尙燮李載德兪浪鄭景俊吳福童黃孫井

 

李愛映李成雲李藝蘭

 

 

 

漫笑座

 

孫一平金元浩金永昌李承夏李一英崔英善尹順善鄭順嬉尹蘭星

 

 

 

藝苑座

 

李業東許影姜道鳳李永鎬朴東一王胤鐵尹益炳林永俊張基華李成洙尹相台咸洪根

 

溫京奉金英一姜柳春金小道金春光林孝恩車京玉李福姬林愛敬金錦子崔仁順洪貞姬

 

金春景洪重順朴理多<242>

 

 

 

金姬座

 

金振門咸德民權正世金正浩趙應童金雲燮姜豪金春植玄尹鳳朴雲石趙乙泰金順燮

 

金泰俊金主傳金鐵仙王勳李影韓貞姬金小貞柳春玉朴愛蘭李淑英金芳草李鳳愛

 

金基紛劉良順浪英順宋榮淑金志媛朴仁順

 

 

 

朝鮮聲樂硏究會

 

金昌龍吳太石金演洙徐鴻九林鍾成姜潭元趙永學丁元燮趙相鮮金世俊金光淳李正業

 

韓南宗朴綠珠朴素香曹弄玉金玉蓮成義香韓山月朴桂順

 

 

 

黃金座

 

成光顯朴銀波金範俊崔桂植朴英泰李松泉金烈崔仁壽金泰仁金錫奉鄭一男李順吉

 

朴行曉生李幸山鄭一夢李福義金貞子牟貞娘金素英朴貞淑金暎愛崔玉善成名子

 

咸喜泰林長順金桂淑金明子許淑子金壽英田明玉成名順金玉順

 

 

 

 

 

主要 레코-製作 會社 一覽

 

 

 

1, 株式會社 日本蓄音器商會 京城支店 (콜럼비아)

 

京城府 櫻井町 1丁目 31번지 전화() 1782

 

朝鮮 文藝部 具玩會 작곡 李龍俊, 金海松

 

2, 日本 빅타- 蓄音器 株式會社 京城 支店 (빅타-)

 

京城府 長谷川町 112번지 京城 () 4239

 

朝鮮 文藝部 柳榮國 작사 李扶風 작곡 李壽麟, 邢奭基 밴드 지휘 李冕相

 

3, 日本 포리돌 蓄音器 株式會社 京城 支店 (포리돌)

 

京城府 本町 2丁目 30번지 전화() 3705

 

朝鮮 文藝部 王 平, 작곡 金敎聲, 金駿泳

 

4, 帝國 蓄音器 株式會社 京城 支店 (오케-)

 

京城府 南大門通 1丁目 104번지 전화() 4554

 

-- 文藝部 李哲

 

5, 大日本 蓄音器 株式會社 京城 營業所 (太平)

 

京城府 鍾路 6丁目 276번지 전화() 2494

 

朝鮮 文藝部 朴英鎬<243>

 

<22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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