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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다방이야기 - 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24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짐다방과 별다방Ⅰ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짐다방과 별다방Ⅰ 인천의문화/김윤식의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 2012-01-24 20:55:59 수업이 끝난 오후 발길 잡던'젊은이의 양지' 13.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짐다방과 별다방Ⅰ 당시 여학생, 당구장·술집 출입 기피 부담 없는 최적의 동행장소 짐다방은 클래식·별다방은 팝음악 위주 마주 앉아 잡담하거나 지루할 땐 성냥개비 쌓기 놀이 ▲ 인천 중구 내동 215번지, 기업은행 건너편 등산용품점 라푸마 건물 2층이 1960~70년대 당시'짐다방'이 있었던 곳이다. 3층은'삼공탁구장'이었다. '은성다방'에 이어 1960년대 신포동(실제는 내동이다) 기업은행 건너편 번화가에 자리 잡았던 '짐다방'과 동인천역전 대한서림 빌딩 2, 3층의 '별다방' 이야기를.. 2023. 6. 23.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은성다방 시절 Ⅲ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은성다방 시절 Ⅲ 인천의문화/김윤식의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 2012-01-24 20:46:58 이제는 사라진 추억 아지트 거기, 청춘이 있었다 12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은성다방 시절 Ⅲ ▲ 과거 인천의 다방은 갤러리 역할도 함께 했다. 많은 작가들이 다방에 모여 예술을 논하며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경기다방'내부. /김효선 촬영 앞 장 말미에서 '은성다방'에서 생긴 특별한 가연(佳緣)을 얼핏 이야기했는데 말이 난 김에 그 반대의사사로운 이야기도 하고 넘어가자. 그것은 약속 시간에 늦어 생긴 비극이다. "8분이 지나고 9분이 와요. 10분만 있으면 나는 가요" 펄 시스터즈가 부른 노래 구절처럼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타국에 이민 가서.. 2023. 6. 23.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은성다방 시절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은성다방 시절 인천의문화/김윤식의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 2011-12-20 12:00:43 삐걱거리는 목조계단 오르면, 작지만 맵시 있는 다실 10.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은성 다방 시절 ▲ 1961년 1월13일'은성다방'에서 열린 음악회 포스터. 피난 시절 부산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문화 예술인들이 암담하고 불안한 나날을 함께 보내던 다방, '밀다원(蜜茶園) 시대'가 있었다면, 인천에는 1950년대 말을 지나 1960년대에 들면서 전쟁의 상흔도 이제 무던히 지워져 가던 무렵, 북에서 남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온 문화 예술인들이 저마다 찻잔을 앞에 놓고 삶과 예술을 논하던, 가난했지만 예술만은 더없이 은성(殷盛)했던, 바로 '은성(銀星) 다방' 시절이 시.. 2023. 6. 22.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다방 전성기의 시작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다방 전성기의 시작 인천의문화/김윤식의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 2011-12-20 11:54:46 시시콜콜한 이야기 들어주던'아네모네의 마담' 9. 1960년대 다방과 문예 중흥시대 - 다방 전성기의 시작 ▲ 1961년 5월29일 동아일보에 실린 커피 판매 금지 기사. 5·16 직후 전국 다방은 일제히"오늘부터 커피를 팔지 않습니다"란 게시문을 내걸었다. 외래품 근절을 위한 자발적 움직임처럼 보도됐지만 사실은 전량을 외국서 수입하거나 미군부대 PX를 통해 불법 유통되는 커피를 뿌리 뽑자는 군부의 조치였다. 다방에 대해 기록으로 남은 것은 문인 등 주로 문화 예술인들이 쓴 글뿐이어서 일반인들의 다방 출입이나 그 관련한 내용은 거의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실제 1960년대.. 2023. 6. 22.
항도 인천에의 다방 전래 - 1950년대 말 문화예술인과 다방    항도 인천에의 다방 전래 - 1950년대 말 문화예술인과 다방 인천의문화/김윤식의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 2011-11-28 22:22:54 문턱 낮은 전시공간무지갯빛 예술혼 피어나 8 항도 인천에의 다방 전래 - 1950년대 말 문화예술인과 다방 ▲ 1952년 8월'등대다방'에서 열린 우문국 화백의'인형전시회'. 당시의 인천화단은 동면상태에 있었고 신생동에서 낙랑다방을 경영하던 이무영 씨가 자신의 작품을 다방에 진열하여 상설 화랑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그만해도 인천에 몇 군데밖에 안 되는 다방 중에서 예술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이곳에서 예술인협회 창립에 대한 의견이 꽃을 피워 드디어 1949년 8월6일 인천 미국공보원 홀에서 결성을 보았다. 이 글은 우문국 화백이 1971년 4월호에 기고한 '.. 2023. 6. 22.
항도 인천에의 다방 전래 - 8·15광복과 6·25한국전쟁 시기   항도 인천에의 다방 전래 - 8·15광복과 6·25한국전쟁 시기 인천의문화/김윤식의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 2011-11-28 22:18:14 격변기 지나 낭만으로의 회귀 항도 인천에의 다방 전래 - 8·15광복과 6·25한국전쟁 시기 ▲ 1930년대 서울 소공동에 있었던 건축가 이순석의 다방'낙랑파라'전경. 1층은 다방, 2층은 화실로 운영했다. 내부에는 꼽추화가 구본웅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바깥 장식은 이상이 설계했다. ▲ '낙랑파라'에서 찍은 사진. 맨앞 안경을 쓴 사람이 안익태의 형인 음악가 안익조, 그 옆이 이순석이다./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소설가 이상(李箱)이 다방 '제비'를 개업하던 1933년을 전후해 서울에는 영화 연극인, 화가, 음악가, 문인 등에 의해 수많은 다방이 생겨나고 이 다방들은.. 2023.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