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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역사산책31

27. 1960년대 초반 무렵 인천 시가지 27. 1960년대 초반 무렵 인천 시가지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1-06-14 17:59:24 쭉 뻗은 선로·닥지닥지 붙은 건물 … 복잡한 도시 풍경 27. 1960년대 초반 무렵 인천 시가지 두 장의 사진이 모두 고 최성연(崔聖淵) 선생의 사진집에 수록된 것으로 1960년대 초반 무렵의 인천시가지를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이 무렵의 인천 인구라야 고작 40만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였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시가지 풍경은 주택과 건물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어서 매우 복잡하고 큰 도시처럼 보인다. 인천 시가지라고 하지만 카메라의 렌즈가 잡은 지역은 지금의 중구, 동구, 남구에 해당하는 일부 지역이다. 그 무렵은 이 일대가 인천의 행정,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 대부분의 관청은 물론 인구의.. 2023. 6. 19.
26. 신외과와 양지공사 26. 신외과와 양지공사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1-05-29 22:21:55 등 맞대고 있던 두 건물, 지금도 남아 있다면… 26. 신외과와 양지공사 중구 중앙동을 지나치다 보면 생각나는 집이 둘 있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신외과(愼外科) 건물과 오른쪽 사진 속의 인천양지공사(仁川洋紙公司)이다. 생각 없이 이 집들을 지나쳐 다니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지금은 두 집이 다 사라져 없고, 주인들까지도 모두 타계하셨다. 신외과의 위치는 신포동 신한은행과 옛 중앙동 파출소 사이에 서 있는 5층 건물 자리로 중앙동 1가 1번지 (신포로 27)이다. 이 옛 건물은 일제 때인 1920년대 초, 일본 면직물 도매상 히라노상점(平野商店) 주인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점포, 창고, 주택을 갖춘.. 2023. 6. 19.
24. '인천도나스' 24. '인천도나스'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1-05-06 01:04:44 즉석 도넛 사이에 두고 男女학생들 '속닥속닥' 24. '인천도나스' ‘인천도나스’ 집처럼,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추억의 장소로 남은 곳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 설레며 드나들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196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이 집이 더욱 아련하게 떠오를 것이다. 기독병원을 지나와 율목동으로 내려서는 돌계단 조금 못미처서 가로로 넓은 유리창과 표정 없이 무뚝뚝한 출입문과 그리고 ‘인천도나스’라고 쓴 아크릴 야간 조명 간판이 돌출해 달려 있던 도넛 집. 이 도넛 발음을 일본식으로 도나스라고 부르고 그대로 써 붙인 것도 다 추억의 한 장면 같게만 느껴진다. ‘인천도나스.. 2023. 6. 18.
23. 인천의 성냥공장 23. 인천의 성냥공장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1-04-13 12:42:15 '성냥 메카' 이름 날려 ← 1960년대 → 라이터에 밀려 사양길 23. 인천의 성냥공장 전국 어디서나 인천하면 떠올리는 것이 소금과 성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소금은 한창 때인 1932년, 인천 주안염전을 비롯해 남동염전에서 전국 소비량의 절반인 15만 톤을 생산해 낼 정도였으니 그 명성이 널리 퍼지지 않을 리 없었고,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소금 한 줌 나지 않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짠물’이라는 별명으로 남아 있다. 인천 성냥 역시도 세월의 변화와 물자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어 진즉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고 말았는데, 상스럽고 저속하기 이를 데 없는 노래 가사(歌詞) 속에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 만드는 아가씨…”.. 2023. 6. 17.
22. 1954년의 인천 22. 1954년의 인천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1-04-08 13:47:41 휴전 이듬해 전쟁의 상흔 고스란히 [김윤식의 인천산책] 22. 1954년의 인천 ‘단기 4288년도 판 『인천연감(仁川年鑑)』’에는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54년 인천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연감이라는 것은 바로 직전 해에 각 분야에서 ‘생기(生起)한 사항’의 모든 수치와 내용을 수록하는 통계, 자료집인데 단기 4288년 판이라면 서기로는 1955년도 출판 본으로 실제 내용은 그 전 해인 1954년 내용이 되는 것이다. 연감을 펼치면 눈길을 끄는 것이 우선 ‘개설(槪說)’에 나와 있는 당시 인천 인구 통계다. 1954년 12월 말 현재 5만2천85가구에 인구 총수는 26만6천914명이다. 280만에 육.. 2023. 6. 17.
21. 경인기차 통학 21. 경인기차 통학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역사산책 2011-03-13 01:29:03 떠나는 기차 난간 붙잡고 뛰어오르던 일 다반사 21. 경인기차 통학 부평이나 주안, 그리고 수인선을 타고 다니던 송도 바깥쪽, 소래 근방의 학생들은 이미 중학교 때부터 인천으로 기차통학을 했지만, 인천 한복판에 살던 우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서야 기차통학을 처음 시작했다. 그 날짜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1966년 3월 2일 수요일, 45년 전 ‘꼭 오늘’부터였다. 이날 입학식을 했는지, 강의를 처음 들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아직 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미명의 새벽을 달음질쳐 동인천역에 다달아 들뜬 기분으로 같은 대학 신입생 동기들과 기차에 오르던 기억이 난다. 그때.. 2023.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