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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인천이야기85

(61) 인천시립박물관 (61)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4-02 15:48:22 몽골서 온 매머드 상아 '생뚱맞은' 개관식 전시 (61)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1946년 4월 1일이다. 그러니까 바로 어제가 개관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11월에 작고하신 이경성(李慶成) 선생이 초대 관장이 되어 불과 6개월의 준비 끝에, 시립(市立)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것이다. 박물관 자리는 중구 송학동 1가 1번지, 옛 세창양행 숙사 건물이었다. “개관 당시에 진열된 유물은 386점(토기 47점, 도자기 53점, 사기 3점, 석기 28점, 서화류 19점, 목기 2점, 잡류 96점, 금속류 25점, 골각류 1점)에 달하였는데, 이것은 이 관장이 6개월간의 개관 준비 기간 .. 2023. 6. 11.
(58) 인천, 86년 전 3월 (58) 인천, 86년 전 3월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3-15 12:15:19 ‘인천 시가지 日人 소유가 7배’ (58) 인천, 86년 전 3월 금년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망국의 역사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고, 더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뼈아프게 새겨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3월, 이 달은 만세운동의 달이다. 민족 자각의 자주 독립 선언과 함께 만세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졌던 달이다. 그것이 국치 9년 후인 1919년 3월 1일. 이 3월의, 우리 민족의, 뜨거운 역사를 잊을 수는 정녕 없다. 지금으로부터 86년 전이면 1924년으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5년 뒤가 된다. 만세운동으로 일시 일제가 강압 정치에서 소위 문화 정책으로 전.. 2023. 6. 11.
(57) 축구심판 서병의 (57) 축구심판 서병의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3-06 12:45:33 1930년대 국내외 경기 주심 도맡아 (57) 축구심판 서병의 개화기 인천항 객주로서 인천항신상협회(仁川港紳商協會) 설립을 주도하고 후일 인천감리(仁川監理)까지 지냈던 유명한 상인 서상집(徐相(57) 축구심판 서병의潗)의 장자(長子)로 영국에서 정통 축구 지식을 습득한 권위 있는(?) 축구 심판 서병의(徐丙義 1893~1945)에 대해서는 인천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고 최성연(崔聖淵) 선생의 『개항과 양관 역정』에 그에 대해 고작 몇 줄 나와 있는 것이 전부다. “축구를 하러 웃터골로 나올 적이면 일반 청년들은 겨우 미투리에 감발을 하였건마는 그들 형제는 가죽 축구화도 부족해서, 정강이까지 가죽 용구로 감싸.. 2023. 6. 9.
(56) 인천의 빙상경기 역사 (56) 인천의 빙상경기 역사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2-28 00:10:00 개항후 洋人들 스케이트장으로 (56) 인천의 빙상경기 역사 우리 빙상 선수들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연일 낭보를 전해온다. 믿기지 않는 쾌거에 온 세계가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을 이제 빙상 거인으로 우러러 바라본다. 그리고 바로 오늘, 전 세계가 또 한 번 한국 낭자가 수놓는 빙판 위의 현란한 묘기와 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찬탄과 부러움의 박수를 칠 것이다. 이번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 중에는 우리 인천 출신 소녀도 보인다. 쇼트트랙 여자 1천500m 결승에서 장하게도 연수여고 이은별 양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에 아이스링크라고는 연수구에 있는 동남스포피아 한 군데가 고작인데, 이런 열악한 환.. 2023. 6. 9.
(55) 의병장 지홍일 (55) 의병장 지홍일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2-28 00:07:25 강화 근거로 신출귀몰 … 일제 응징 (55) 의병장 지홍일 『고종시대사』 6집, 1909년(己酉) 2월 16일자에는 “강화를 근거로 각지에 출몰하던 의병장 지홍일(池洪一)이 개성(開城) 지방에서 피체(被逮)되어 인천경찰서에 압송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내용은 1909년 2월 19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101년 전 오늘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실려 있다. 강화를 근거로 의병 투쟁을 벌이던 지홍일(생몰년 미상) 의병장이 개성경찰서에 체포되어 관할 인천서로 이송되었다는 요지이다. 그는 1908년 4월에 의병이 되어 이듬해 1월 31일에 체포되었으니 그의 의병 활동기간은 대략 10개월 정도이다. 그.. 2023. 6. 9.
(54) 수인선과 소래철교 (54) 수인선과 소래철교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2-16 12:58:07 60년 세월 숨차게 달리던 우리나라 유일 협궤철도 (54) 수인선과 소래철교 수인선은 일제가 경기도 여주, 이천 등지에서 나는 최상품 쌀을 인천항으로 운반해 가려는 의도와 경기도 수원을 기점으로 해서 강원도 춘천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 내륙 개발이 목적이었다. 또한 소래, 군자 등지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의 운반 수단이기도 했다. 더불어 1931년 만보산(萬寶山)사건과,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대륙 침탈을 획책하던 일제가 유원지인 월미도를 병참기지로 만들고 대신 송도를 새로운 위락지구로 개발함으로써 수인선 승객을 유치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수인철도는 1935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1937년에 개통된다. 이.. 2023.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