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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과옛적의 인천이야기87

바다에서 건진 용궁사의 돌부처 바다에서 건진 용궁사의 돌부처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3 00:16:31 바다에서 건진 용궁사의 돌부처 영종도에는 경치 좋은 백운산 밑에 옛날부터 용궁사라는 절이 있다. 용궁사에는 절을 지켜주는 돌부처가 하나 있었다. 그 돌부처의 유래는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씨라는 어부가 한 사람 살고 있었다. 비록 살림은 궁핍했으나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어부들과 마찬가지로 조그마한 어선 하나로 고기를 잡으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고기잡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어느 해 음력 사월이 되었다. 음력 사월이 되면 어부들은 모두 연평도로 조기를 잡으러 가게 되는데 손씨도 남들과 같이 출어를 한 것이다. 마침 조기가 많이 몰릴 때라 여기저기 그물을 친 뒤 한참 후.. 2023. 3. 13.
강화-연꽃과 다섯개의 절 백련사,청령,적련,황련,적석사 강화-연꽃과 다섯개의 절 백련사,청령,적련,황련,적석사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2 00:44:37 연꽃과 다섯개의 절 고구려 장수왕 4년(416)의 어느 날이었다. 인도에서 온 스님 천축조사와 왕이 마주 앉았다. 왕이 먼저 말했다. “대사께서 멀리 우리 나라까지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사께서 우리 나라를 위해 꼭 하셔야 될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이신지요?” 천축조사가 말을 했다. “가난하고 죄 많은 고구려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전국 각처에 절을 세워야 됩니다.” 임금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우리 백성을 위하는 일은 우리 나라를 위하는 일이니 대사께서 그 일을 맡으셔서 해 주기 바라오.” 천축조사는 왕의 명을 따라 절을 세우려고 적당한 땅을 찾았다. 남쪽으로 발길을 .. 2023. 3. 13.
호랑이 입 모양의 호구포 호랑이 입 모양의 호구포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3 00:19:04 호랑이 입 모양의 호구포 인천광역시역사자료관 인천역사문화총서 中 남동구 논현동 서남쪽에 있는 호구포는 말 그대로 호랑이의 입처럼 생긴 포구라는 뜻이다. 호구포 뒷산인 오봉산 기슭에 마치호랑이가 어흥 소리를 내며 입을 한껏 벌린 듯한 형상의 검고 커다란 바위가 있어 사람들이 호구암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포구이름도 범아가리 또는 호구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부근에 구한말 해안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논현포대, 일명 호구포대가 있었다. 호구암은 바다 건너 시흥 대부도를 집어삼킬 듯이 응시하고 있어서 대부도에서는 개를 키우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대부도 사람들이 집안에 개를 사다 기르려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하다가 죽어.. 2023. 3. 13.
신도의 효자와 선녀 신도의 효자와 선녀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2 00:41:47 신도의 효자와 선녀 영종도 옆에 신도라는 조그만 섬마을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성 지극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소년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 둘이서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소년은 총명했을 뿐 아니라 심성이 유난히 곱고 착하며 어머니에 대한 효성 또한 지극했다.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어머니와의 생활이 마냥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원인 모를 병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며 어머니의 병도 깊어만 갔다. 세월이 흘러 소년이 어느덧 청년이 되었다. 어머니도 세월만큼 늙었고 병은 좀처럼 회복되질 않으니 청년의 마음은 천근 만근 무겁기만 했다. 살림이 어려운 것은 문제가 아니.. 2023. 3. 13.
강화-임금님을 울린 말, 벌대총 강화-임금님을 울린 말, 벌대총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2 00:41:00 임금님을 울린 말, 벌대총 예로부터 강화도에는 목장이 많았다. 전쟁 때 쓰기 위한 말을 그곳에서 길렀다. 그 중에서도 양도면 진강산의 목장은 명마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진강산의 말은 용맹스럽고 영리한 데다 달리는 것이 바람과 같았고 온 몸은 흰색인데 비해 갈기와 꼬리는 푸르스름한 색깔을 띤 모습이었다.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했다(병자호란). 이때 우리 나라에서는 봉림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볼모로 잡혀갔다. 멀리 적국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돌아온 봉림대군은 뒷날 효종으로 즉위하자 청나라를 칠 계획을 세웠다. 당시 우리 정부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여 강화도를 임시 피난처로 정했.. 2023. 3. 12.
문학,청학-이별하던 가슴 아픈 삼호현 문학,청학-이별하던 가슴 아픈 삼호현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2 00:40:06 이별하던 가슴 아픈 삼호현 삼호현이라고 불리는 고개는 지난 날 인천 읍내 쪽에서 송도 해안으로 나올 때 이용하던 고개인데, 지금으로 보면 문학동에서 청학동으로 넘어오는 고갯길이다. 이 길에는 많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우선 이 고갯길의 이름만도 삼호현, 삼해주현, 사모현 등이 있다. 더불어 발음에 따라 사모지 고개, 사모재 고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고개에 삼호현 전설이 깃든 것은 백제 시대 뱃길로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 지금의 옥련동 능허대 공원 부근 한나루에서 배를 타기 위해 넘었던 데에서 연유한다. 당시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은 지금 남동구 만수동의 ‘이별을 하는 고개’라는 뜻의 별리현을 거쳐, 다시 .. 2023.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