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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36

인천학 강좌> 여섯번째 이야기 < 인천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인천학 강좌> 여섯번째 이야기 여섯번째 이야기 < 인천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어운(語韻)도 그리운손 인천 새 동명(洞名), 순수한 조선색(朝鮮色)의 76개 동(洞), 신년부터 완전히 왜취(倭臭)를 말살하자’ 지난 1945년 12월23일자 ‘대중일보(大衆日報)’의 기사 제목이다. 대중일보는 일제가 인천 땅에 박아놓은 ‘언어의 쇠말뚝(일본식 지명)’을 마침내 뽑아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인천시가 새로 정해 발표한 76개 동명 가운데 왜색이 짙은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송도정(松島町)-옥련동(玉連洞)’, ‘도산정(桃山町)-도원.. 2023. 5. 31.
인천학강좌 일정표 인천학강좌 일정표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7-24 20:16:28 2023. 5. 31.
[자료]<5>인천근대건축산책 [자료]인천근대건축산책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7-23 22:43:32 [화도진 도서관 인천학 강좌 강의자료] 인천근대건축산책 손 장원 (인천시 문화재위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 제1부 인천 근대건축의 전개과정 ○ 시기구분 : 개항기, 일제강점 초․중기, 일제강점 말기 ○ 개항기는 서양인,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이 자국의 건축물을 인천에 세운 시기로 응봉산 남쪽 경사지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로 채워짐 ○ 일제강점이후에는 새로 건축되는 건물의 수가 급격히 줄었고, 건축양식도 일본식이나 일본 의양풍 건축물이 주류를 이룸 ○ 건물의 용도도 관공서나 상사 등의 건축은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주로 소규모 점포나 주택 ○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인천우체국, 인천공회당,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신사.. 2023. 5. 31.
[자료]<6>인천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송도(松島)’는 없다 [자료]인천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송도(松島)’는 없다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7-23 21:12:00 화도진 도서관 인천학강좌 인천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조 우성 (인천시 시사편찬위원) 1. ‘송도(松島)’는 없다 21세기 인천의 운명 건 신도시가 ‘송도’라니 일제의 잔재 달고는 역사 왜곡 탓할 수 없어 섬 아닌 땅을 ‘섬’이라고 부르는 인천사람들 “어운(語韻)도 그리운손 인천 새 동명(洞名)” “순수한 조선색(朝鮮色)의 76개 동(洞)” “신년부터 완전히 왜취(倭臭)를 말살하자!” 1945년 12월 23일자 대중일보(大衆日報) 2면의 톱기사 제목이다. 이날 인천 최초의 국문신문인 대중일보는 일제가 인천 땅에 제멋대로 박아놓은 ‘언어의 쇠말뚝’(일본식 지명)을 인천시(仁川市) 당국이 마.. 2023. 5. 31.
인천학강좌> 다섯번째 이야기 < 인천의 근대건축 산책> 인천학강좌> 다섯번째 이야기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7-21 15:40:12 ‘나비부인’ 딸 인천에 살았다 화도진도서관과 함께하는 인천학 강좌> 다섯번째 이야기 < 인천의 근대건축 산책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실제 주인공의 딸이 인천에 살다 청학동에 묻힌 것으로 드러났다.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손장원 교수는 14일 화도진도서관 평생학습실에서 열린 ‘화도진도서관 인천학강좌-인천의 근대건축 산책’에서 ‘나비부인’의 모델이 된 ‘야마무라 쓰루’의 딸 ‘글로버 하나’가 인천에 시집와 살다 청학동에 묻혔다고 밝혔다. 손 교수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 토마스 글로버는 1861년 24세 나이에 일본에 글로버 상회를 설립, 선박과 무기를 판매한 상인이다. 그가 일본에 팔았던 선박 .. 2023. 5. 30.
인천학 강좌> 네번째 이야기 < 고려가 강화에 온 까닭은> 인천학 강좌> 네번째 이야기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7-13 14:04:59 빠른 물살·갯벌…39년간 몽골에 맞서 화도진도서관과 함께하는 인천학 강좌> 네번째 이야기 < 고려가 강화에 온 까닭은 강화도를 흔히 보장지지(保障之地) 또는 보장지처(保障之處)라고 부른다. 나라와 왕실의 운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고종 19년(1232년) 고려는 몽골의 잦은 공격을 피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빠른 물살과 갯벌로 배를 댈 수 없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지닌 강화도에서 고려는 39년 동안 몽골군에 맞설 수 있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려가 다른 지역도 아닌, 강화도로 간 이유를 몽골군이 물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다. 수십년 전 국사학계 한 원로.. 2023.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