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3500

송현배수지 제수변실(制水弁室) 송현배수지 제수변실(制水弁室) 인천의관광/인천풍경 2022-05-21 11:03:54 [김재열의 풍경드로잉] 송현배수지 제수변실(制水弁室) ▲ 인천 동구 솔빛로 51 송현근린공원에 있는 송현배수지(인천시 문화재 자료 23호). 인천 동구 솔빛로 51 송현근린공원에 있는 송현배수지(인천시 문화재 자료 23호)는 인천 최초의 상수도 시설로 1906년 11월 착공하여 1908년 준공하였다. 표고 56.8m 언덕에 위치한 제수변시설은 배수관의 통수나 단수 또는 유압 조절기능을 담당하는 제수 밸브를 보호하는 시설물이다. 일체식 무철근 콘크리트의 원통형 구조를 하고 상부를 페디먼트로 장식한 철문 출입구와 창문이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면 출입구 위에는 1912년(윤희 6년) 유맹의 만윤백량(萬潤百凉)이라.. 2023. 7. 8.
모던 경성 젊은이들의 세련된 절망 모던 경성 젊은이들의 세련된 절망 '묻지 마라 갑자생' 아버지 도대체 이렇게 바보처럼 답답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이 세대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세대는 저 같은 중년들의 아버지 세대입니다. 아버지 세대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저도 이제 늙은 모양입니다. 저는 아버지 세대들이 참 불쌍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아버지는 1924년생이십니다. 이 말을 꺼내면 같은 또래 노인분들은 대뜸 “묻지 마라, 갑자생이구만." 하십니다. 1924년이 갑자년이었습니다. 바로 그 해에 태어난 아이들부터 일제 말에 강제징병을 당했습니다. 그전까지 조선의 젊은이들은 허울이나마 지원이라는 절차를 거쳐 군대로 보내졌는데,.. 2023. 7. 8.
근대 국제도시 인천이 개항지로 선택된 이유는? 근대 국제도시 인천이 개항지로 선택된 이유는? 仁川愛/인천이야기 2022-05-12 17:18:28 https://youtu.be/4se89q0JfYk 각국지계계단 헝가리 의사 보조끼 데조가 1908년 한반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 2023. 7. 8.
녀름情趣, 녀름情緖 / 여름정취, 여름정서 / 별건곤 제14호 녀름情趣, 녀름情緖 / 여름정취, 여름정서 / 별건곤 제14호 知識 ,知慧 ,生活/옛날공책 2022-05-10 09:22:08 녀름情趣, 녀름情緖 / 여름정취, 여름정서 꾀꼬리 노래 / 金南柱 꾀꼬리라니 버들이 생각이 난다. 버들나무 천만 사로 늘어진 것이 업시 어이 꾀꼬리를 생각 할 것이냐. 버들은 물가에 잇는 것 언덕우에 서잇는 것이 눈압헤 나타난다. 지나간 때이 잇섯다. 서울 와서야 왼걸 꾀꼬리를 들엇겟스며, 버들나무 밋헤 가기나 해보앗는가. 노란 새 금빗새 녯 사람은 누른 새를 매질하여서 가지 우에서 울지 못하게 하엿다 한다. 그리운 님을 더욱 그리웁게 이것으로 상하는 마음을 더욱 상해서 만리밧 전장에 나가신 님을 못닛게 하야 병들게 하니 매질하야 이를 멀니 보내엇다 한다. 꾀꼬리 소리는 사람을 .. 2023. 7. 8.
인천지형의 곡선미 / 정암(鄭巖) 인천지형의 곡선미 / 정암(鄭巖)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22-05-10 01:00:53 인천지형의 곡선미 / 정암(鄭巖) 인천의 지세는 여성적이다. 광대(廣大)치 않고 세장(細長)하며 험고(險高)는 못되나 굴곡이 많은 도로가 복잡부정연연(復雜不整然)한 품이 과도기적 여성과 흡사한 데가 있다. 서편으로 뻗친 족부(足部) 항정(港町)은 경인복선을 꾀하는 인천역과 중만(中滿)무역의 야심을 가진 축항이 있는 곳이다. 발목격인 해안정(海岸町)에는 운송업 무역업자들이 종종거름을 치고 화방정(花房町) 만석정(萬石町)들 종아리에는 통통한 재벌공장들이 들여백였고 미생정 (彌生町) 중정(仲町)은 장딴지처럼 살이 핑핑한 모양이요, 산근정(山根町), 산수정(山手町) 일대는 마치 살찐 엉덩이 모양으로 문화주택이 두둑하게.. 2023. 7. 8.
기계공고 학생들, 맨 처음 나서 / 4.19 기계공고 학생들, 맨 처음 나서 / 4.19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22-03-08 01:56:05 # 4·19 당시 인천시내 중·고·대학생 수 천여 명이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인천은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기계공고 학생들, 맨 처음 나서 / 4.19 1960년 3월 2일, 인천 답동 광장에서는 '시민 위안 영화의 밤' 이 열렸다. 상영 프로그램은 독립협회와 이승만, 만송(晩松) 이기붕' 등이었다. 시민 위안을 핑계 삼은 사전 선거 운동이었다. 3월 8일, '인천상공회의소 상임위원회'는 '이승만, 이기붕 당선 추진 결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역 시국은 점점 뒤숭숭해져 갔다. 3·15 정부통령 선거 바로 전날인 14일 저녁, 남녀 학생들은 시내 곳곳에서 공명선거 보장하라는 전단을 뿌리며 데모를.. 2023.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