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옛모습297 1867년의 영종도와 주민들의 모습 1867년의 영종도와 주민들의 모습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2-19 14:28:16 1867년의 영종도와 주민들의 모습 ▲ 임학성(인하대 한국학연구소 교수) 지난 호 지면에 1867년 당시 영종도와 삼목도, 용유도 등(이하, 이들 세 섬을 통칭하는 경우 ‘영종’이라 함)에 살았던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는 호적(戶籍)자료를 소개했다. 이번 호에는 이 호적자료를 통해 ‘영종’ 주민들이 어떻게 구성돼 있었는가를 소개해 본다. # 1867년 당시 ‘영종’ 주민수는 최소 5천 명 영종호적에 올라 있는 주민은 모두 2천781명으로 남자가 1천552명, 여자가 1천229명이다. 섬별로는 영종도가 1천976명(남자 1천93명과 여자 883명)으로 가장 많았고, 용유도가 637명(남자 366명과 여.. 2023. 5. 21. 1867년의 영종도 1867년의 영종도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2-10 16:49:37 1867년의 영종도 -영종진 설치와 호적대장- ▲ 임학성(인하대 한국학연구소 교수) # 자연도에서 영종도로 영종도(永宗島)의 옛 이름은 자연도(紫燕島)인데, 자줏빛[紫]의 제비[燕]가 많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런 운치 있는 이름이 ‘영종’으로 바뀌게 된 연유는 조선 효종 4년(1653)에 남양(현재의 화성시 일대)에 있던 영종수군진(水軍鎭)을 자연도로 옮기면서 ‘영종진’이란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곧바로 ‘자연’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이후로도 상당 기간 섬 이름은 ‘자연’이었고, 수군진의 명칭만 ‘영종’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슬그머니 섬 이름이 ‘영종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명칭 변경.. 2023. 5. 21. 대청도 앞바다의 고래잡이 대청도 앞바다의 고래잡이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2-03 17:53:55 대청도 앞바다의 고래잡이 ― 식민지포경업, 서해안 고래의 씨를 말리다 ― ▲ 유창호 옹진군지편찬위원회 전문위원 우리나라에서 포경업(捕鯨業)[포경(捕鯨 : 고래잡이)]의 시작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 선봉의 서포항 유적에서부터 부산 동삼동 패총, 통영 연대도 패총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적에서 6천여 년 전의 고래뼈들이 출토됐다. 그리고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에서 보여지듯 소형 어선을 타고 작살로 고래를 잡는 모습은 원시시대의 포경이 일상적인 수렵활동의 한 부분이었음을 나타내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포경업은 단순히 어육을 얻기 위한 수렵행위가 아니라 산업화를 위한 자원으로 인식됐다. 고래에서 얻어지는 기름은 유.. 2023. 5. 20. 인천팔경(仁川八景) 인천팔경(仁川八景)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1-20 00:09:57 인천팔경(仁川八景) 남동걸(인천시 중구사편찬위원회 상임연구원) 우리나라에는 ‘○○팔경’이라고 해 전국 곳곳에 팔경(八景)이 분포돼 있다. 이 팔경은 팔경시(八景詩)에서 유래된 것인데 팔경시(八景詩)는 중국 양대(梁代)의 심약(沈約, 441∼513)에 의해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팔경시는 11세기인 송대(宋代)에 이르러 소상강(瀟湘江) 일대의 승경(勝景)을 팔경으로 집약하면서 일반화된 시(詩)의 형태를 띠게 된다. 우리나라에 팔경시가 언제 전래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고려 명종 때 왕명에 의해 신하들이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짓고,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후.. 2023. 5. 19. 가사와 고전소설 속의 강화도 가사와 고전소설 속의 강화도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9-01-15 22:42:55 가사와 고전소설 속의 강화도 -병인양요와 병자호란의 기형적 대응- 이영태(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BK21 연구교수) 가사(歌辭)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발생한 시가(詩歌)이다. 4음보 연속체로 된 율문(律文)으로 한 음보를 이루는 음절의 수는 3·4음절이 대부분이고 행수(行數)에는 제한이 없다. 그래서 가사는 율문이되 서정시와는 달리 사물이나 생활에 관한 잡다한 서술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의 가사는 일부 학자층만 창작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영·정조 시기를 거쳐 민간에도 널리 유행해 평민이나 부녀자들도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병인양난녹’은 강화도에 살았던 민씨(閔氏) 며느리 경주 김씨가 쓴 가사.. 2023. 5. 19. 인천의 산이동 구전설화 인천의 산이동 구전설화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9-01-15 22:39:37 인천의 산이동 구전설화 이영태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BK21 연구교수) # 서울을 향한 짝사랑-인천의 산이동 구전설화 설화는 구전되는 이야기를 총칭한다. 설(說)이란 글자의 뜻에 ‘말하다’와 그것을 듣고 ‘즐거워하다’가 결합된 것이니 만큼 설화는 발화자나 수신자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수신자는 수신자에 머무는 게 아니라 발화자로 변모해 새로운 수신자를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에서 발화자는 기존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에 맞게 윤색 및 가감을 한다. 특정 설화의 발화자가 특정인 아니라 누구이건 발화자이면서 동시에 수신자일 수 있는 것이다. 발화자와 수신자의 양면을.. 2023. 5. 19.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