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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297

소월미도 해안 제방의 모습(1973 소월미도 해안 제방의 모습(1973 소월미도 일대 매립공사가 끝난 후 완공된 해안 제방의 모습이다. 2023. 5. 11.
싸리재 싸리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7-19 00:32:57 서구 문물 유입의 일번지 - 싸리재 일제에 의한 강제개항 이후 서구문물 유입의 통로로 자리를 잡으면서 인천은 각 나라 상품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상점들도 속속 생겨났다. 그러나 개항 초창기만 해도 인천 자체만으론 인구나 물자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 내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점차 「개항장」으로 활성화하고 외국상사들이 인천에 잇따라 대리점을 개설하면서 1920년대 말을 전후해 지금의 배다리_경동사거리_신포동 한미은행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됐다. 당시 주를 이루던 업종은 포목전. 특히 경동 싸리재(배다리 철교를 지나 경동사거리에 이르는 고갯길로 싸리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인 이름)길.. 2023. 5. 10.
인천잡시에 보이는 인천의 요릿집 인천잡시에 보이는 인천의 요릿집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7-02 00:36:36 인천개항장 풍경(2) - 인천잡시에 보이는 인천의 요릿집 이영태 인하대 BK21 연구교수 # 개항기 인천 요릿집에 대한 시선 요릿집은 기생을 두고 술과 요리를 파는 곳을 지칭한다. 어느 시대건 술과 요리, 그리고 기생이 결합된 형태가 있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인천잡시』에는 요릿집과 관련된 한시가 등장한다. 그것도 일본, 청, 조선의 경우가 공존하기에 이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물론 각국의 요릿집에 대한 시선의 주체는 전환국 직원이면서 『인천잡시』의 저자 요코세 후미오(橫瀨文彦)이다. ▲ 일본공원 부근 정경 화려한 난간 앞에서 낮게 노래 부르며 술.. 2023. 5. 9.
청일전쟁 무렵의 월미도 풍경 삽화(1893) 청일전쟁 무렵의 월미도 풍경 삽화(1893)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청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한 조선에 왔던 일본 특파원 사쿠라이 군노스케 의책 {조선시사}에 실려있는 월미도 삽화이다. 이 삽화는 그와 함께 동행한 일본 의 구보다 베이센이 스케치한 것이다. 2023. 5. 9.
제물포항과 월미도 그림기념엽서(1890년대) 제물포항과 월미도 그림기념엽서(1890년대)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1890년대 조선의 제물포와 월미도가 외국에 소개되는 데 있어 요긴한 역할을 한 그림엽서이다.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2023. 5. 9.
월미도와 북성동을 잇는 도로의 개통(1970년대 말) 월미도와 북성동을 잇는 도로의 개통(1970년대 말)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오늘날의 인천역에서 인천항 앞을 지나 월미도를 들어가는 도로가 시원하게 개통된 모습이다. 1970년대 말까지도 이 도로 앞에는 인천항 부두가 건설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023.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