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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299

배다리의 옛모습과 현재 배다리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0:33:09 배다리의 지명 유래 중구 경동에서 경인전철 다리 아래를 지나 동구 금곡동 초입에 이르면 중앙시장 앞이 나오는데 바로 이 지역이 '배다리'다. 이 곳은 19세기말까지 화수동 괭이부리에서 수문통을 걸쳐오는 커다란 개울이 있었다.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경인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는 이 곳에 배를 대어 놓을 수 있는 다리가 놓여 있어 '배다리' 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복개돼 그 개울이나 다리를 찾아볼 수 없지만 이 곳을 아는 사람들은 1950년대 말까지도 먼 갯내음이 풍겨오고 갈매기도 몇 마리씩 날아들었다고 한다. 배다리는 원래 「교각을 세우지 않고 널조각을 이어 놓은 다리」 라는 뜻의 보통명.. 2023. 5. 8.
만석부두의 옛모습과 현재 만석부두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0:31:18 만석부두 인천시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에는 3곳의 부두(포구)가 있다. 매립의 역사와 함께 생겨난 북성포구와 화수부두, 그리고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만석부두. 이들 세 부두는 공장 사이 사이에 숨어 있다. 아는 사람만 알고, 그나마 아는 사람들에게도 잊혀지지 않았나 생각드는 곳에 있어 찾기 힘들다. 1900년대 초반 만수동과 화수동, 송현동, 북성동 해안을 본격적으로 매립하면서 이 일대에는 큰 공장들이 들어선다 동일방직과 대성목재, 한국유리 등 공장들이 굴뚝에서 연신 검푸른 연기를 뿜어내기 이전만해도 이 곳에는 소나무가 무성했고, 산 부리가 괭이(고양이) 모양을 한 작은 섬이 있었다. 매립의 역사가 써지.. 2023. 5. 7.
인천교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교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0:36:06 인천 출신 시인들은 인천교를 시의 소재로 곧잘 삼았다. 그만큼 인천교의 형상이 시인의 가슴속에 각인돼 있었다는 얘기. 하지만 지금 인천교의 자취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인천교는 땅위에 다리가 붙어 있는 「기형적인」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으나 지금에선 그마저 사라졌다. 사실 여기저기 흙을 파헤치고, 고가도로 공사가 한창인(현재는 완공되어 사용되고 있음) 동구 송림동 옛 인천교 자리에서 갯벌이 펼쳐진 위에 다리가 놓여 있는 풍경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외지인들은 종종 인천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마을버스 외부에 부착된 「인천교자동차매매센터」 광고를 보고 『인천에 다리가 어디 있느냐』고 택시기사.. 2023. 5. 7.
창영동의 옛모습과 현재 창영동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0:34:00 창영동의 지명 유래 금창동은 본래 인천부 부내면 금곡리와 우각동 지역인데, 해방 후 금곡리 지역은 금곡동이 되고, 우각리 지역은 창영동이 되었으며, 1985년 11월 15일 시조례 제1895호(1985. 9. 19 공포)에 의거 금곡동과 창영동을 통합하여 그 머리 글자를 따서 금창동이라 하였다. 금곡동은 본래 인천부 부내면 금곡리 지역으로서 '쇠골' 또는 '금곡'이라 하였는데. 일제인 1914년 4월 1일부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곡리라 하였다가 1946년 1월 1일부터 금곡동이 되었다. 그 후 1949년 8월 15일 인천부를 인천시로 고치는 동시에 금곡동을 갈라서 금곡1동과 금곡2동으로 분동하구 다시 앙동을 합쳐 금곡.. 2023. 5. 7.
인천의 옛모습 인천의 옛모습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월 미 도 전 경 외 국 인 거 리 대한제국 관립 인천외국어학교 인 천 항 전 경 인 천 항 전 경 2 제 물 포 제 물 포 전 경 제 물 포 전 경 제 물 포 전 경 제 물 포 전 경 제 물 포 개 항 축 제 2023. 5. 7.
동인천역사 낙성식 동인천역사 낙성식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23.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