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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297

7-80년대의 월미도 유원지 7-80년대의 월미도 유원지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지금은 문화의 거리로 바뀌어 차가 다닐 수 없게 된 월미도 유원지 해변도로를 버스와 택시들이 오가고 있다. 7-80년대 월미도 해안도로 일대는 그나마 경인지방 시민들이 가까이 찾아와 바다의 풍취를 즐기는 상업유흥지였다. 2023. 5. 9.
1970년대 말의 항동 일대와 월미도(1978) 1970년대 말의 항동 일대와 월미도(1978)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제59회 전국체전이 인천에서 개최되었던 1978년의 항동 일대와 월미도의 원경이다. 반세기에 달하는 인천우체국 건물에는 '총화유신'이라는 구호가 선명하고, 전국체전을 기념하는 도로의 대형 아치는 현란하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월미산은 군사지대로 시민의 발길이 통제되었다. 2023. 5. 9.
인천개항및 이후 사진들 인천개항및 이후 사진들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1918 년 인천역(스탬프의 corea가 선명하다 독일 해도에 보이는 월미도와 소월미도 물빠진 인천항과 월미도 광경 소 월 미 도 등 대 소 월 미 도 풍 경 웃터골 운동장 ( 현재 제물포고교운동장 ) 인천 본전통거리 (현 중앙동과 신포동사이거리) 인천항 시가지 전경 (스탬프의 corea가 선명하다.) 2023. 5. 8.
60년대 살아가던 서민들의 삶의모습들 60년대 살아가던 서민들의 삶의모습들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3:17:29 만석동 아이들이 철로에서 널뛰는 모습 6. 25 직후까지도 사용되던 짚신 아이들의 겨울철 쥐불놀이 60년대 후반까지 있던 거리의 지게아저씨 강화시장 풍경 강화시장 풍경 2 경 서 동 의 초 가 집 구 두 수 선 공 농가의 담구실을 하는 거적 짜기 달 구 지 빨 래 터 의 풍 경 뻥 이 요 ! 어 머 니 이 발 사 여 물 썰 기 "하시끼"라 불리던 어선(안강망)들의 모습 탈 곡 소중한 가재도구 "풍 로" 인천역에서 서울까지 마라톤준비를 하는 이디오피아의 아베베 선수의 모습 * 이 사진은 인천의 향토사진기자 박 근원 씨가 화도진 도서관에 기증한 사진자료들로 재구성 한 것입니다. 2023. 5. 8.
배다리의 옛모습과 현재 배다리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0:33:09 배다리의 지명 유래 중구 경동에서 경인전철 다리 아래를 지나 동구 금곡동 초입에 이르면 중앙시장 앞이 나오는데 바로 이 지역이 '배다리'다. 이 곳은 19세기말까지 화수동 괭이부리에서 수문통을 걸쳐오는 커다란 개울이 있었다.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경인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는 이 곳에 배를 대어 놓을 수 있는 다리가 놓여 있어 '배다리' 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복개돼 그 개울이나 다리를 찾아볼 수 없지만 이 곳을 아는 사람들은 1950년대 말까지도 먼 갯내음이 풍겨오고 갈매기도 몇 마리씩 날아들었다고 한다. 배다리는 원래 「교각을 세우지 않고 널조각을 이어 놓은 다리」 라는 뜻의 보통명.. 2023. 5. 8.
만석부두의 옛모습과 현재 만석부두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0:31:18 만석부두 인천시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에는 3곳의 부두(포구)가 있다. 매립의 역사와 함께 생겨난 북성포구와 화수부두, 그리고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만석부두. 이들 세 부두는 공장 사이 사이에 숨어 있다. 아는 사람만 알고, 그나마 아는 사람들에게도 잊혀지지 않았나 생각드는 곳에 있어 찾기 힘들다. 1900년대 초반 만수동과 화수동, 송현동, 북성동 해안을 본격적으로 매립하면서 이 일대에는 큰 공장들이 들어선다 동일방직과 대성목재, 한국유리 등 공장들이 굴뚝에서 연신 검푸른 연기를 뿜어내기 이전만해도 이 곳에는 소나무가 무성했고, 산 부리가 괭이(고양이) 모양을 한 작은 섬이 있었다. 매립의 역사가 써지.. 2023.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