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496 향기와 약효가 뛰어났다는 석천사거리 돌우물 인천 석천사거리 돌우물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07 11:18:13 옛날 옛적에 인천은 향기와 약효가 뛰어났다는 석천사거리 돌우물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석천 사거리는 인천시청 후문 언덕길에서 간석동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나온다. 이 지점이 구월동과 간석동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건너편 모서리에 석천초등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석천(石泉)이란 글자 그대로 ‘돌샘’ 또는 ‘돌우물’ 이라는 뜻인데, 옛날 이곳에는 물에서 향기가 나는 돌우물이 있었고, 이 때문에 이 근처 마을을 돌샘마을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돌우물은 옛날 주안산으로 불리던, 만월산 서쪽 기슭에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석천 사거리 부근일 터이지만, 그 실제 위치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전설에는 이 샘물은 아주 좋은.. 2023. 3. 8. 인천 경서동 깨끔재의 영험한 샘물 인천 경서동 깨끔재의 영험한 샘물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07 11:15:19 깨끔재의 영험한 샘물 서곶과 검단의 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썰물 때면 끝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넓게 갯벌이 드러났다. 주로 부녀자들이 이 시간에 갯벌로 나가 낙지, 게, 소라, 조개, 맛조개 따위를 잡았다. 쑥대고잔(현재의 경서동)에 지금부터 100년 전쯤에 절름발이 소녀가 살았다. 천천히 걸을 때는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걷고 급할 때는 한 발로만 땅을 딛고 뛰어가 ‘깨끔이’ 란 별명도 갖고 있었다. 절름발이 소녀는 어머니가 갯벌에 나갈 때마다 오솔길로 좇아나가 작은 언덕에서 어머니와 여인네들이 조개와 게를 잡은 구럭을 이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소녀는 목이 말랐다. 절름거리며 사방을 살펴보다가 이.. 2023. 3. 8. 강화 마니산에서 호랑이잡은 이야기 강화 마니산에서 호랑이잡은 이야기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07 11:12:44 강화 마니산에서 호랑이잡은 이야기 강화도는 우리 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육지와도 꽤 가까운 편이다. 그래서 옛날 강화도에 나무가 울창했을 때에는 육지에 사는 짐승들이 쉽게 이곳으로 건너와 살았다. 노루, 여우, 너구리, 오소리, 멧돼지 등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었고 가끔은 호랑이도 나타나곤 했다.이들 동물들은 마을로 내려와 집에서 기르는 개와 닭 등을 잡아먹는가 하면 농민들의 가장 큰 재산인 소에게까지 해를 입혔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마니산이 있는 화도면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사람이 대낮에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정신을 잃고 끝내 병이 들어 죽었다. 마을 사람들.. 2023. 3. 8. 소연평도 은 골짜기 전설 소 연평도 은 골짜기 전설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07 11:10:50 소 연평도 은 골짜기 전설 소연평도 월출봉 앞 부채산 밑에 맑은 물이 흐르고 경치가 빼어난 골짜기가 있다. 이곳에는 조선조 19대 숙종 때의 문신 서포 김만중 부부의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김만중은 재상을 지낸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 결백하였으며 충성심 또한 깊어 숙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숙종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친히 김만중을 불러 의논을 하곤했다. 그러나 김만중은 간신들의 모함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상자리에서 쫓겨나 매일 피난처를 찾아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 날은 황해도로, 또 어느 날은 충청도로 삼천리 강산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러나 어디에든 역적 김만중을 찾.. 2023. 3. 8. 우리 나라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이승훈 우리 나라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이승훈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7-01-04 09:55:07 우리 나라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이승훈 이승훈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이며 한국 천주교회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되었다. 그 과정에서 비록 몇 차례의 배교를 했다고 해도 그가 한국 천주교회사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조금도 낮아지지 않는다. 조선에서 천주교가 시작된 때는 정조 8년(1784)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미 17세기 초엽부터 천주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른바 ‘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 라고 하는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된 서양 책들을 통해 서학(西學 서양 학문)의 과학 기술과 함께 천주교 신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 2023. 3. 8. 원적사의 빈대와 말무덤 원적사의 빈대와 말무덤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04 09:54:04 옛날옛적에 인천은 원적사의 빈대와 말무덤 부평구 산곡동과 서구 석남동 사이에 뻗어 내린 계양산의 지맥이 봉우리로 우뚝 솟은 것이 원적산이다. 조선 시대에 경인 운하를 파는 공사를 할 때, 이 산을 뚫지 못해 실패했다 하여 원통함을 쌓았다는 뜻으로 원적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뒤에 한자 표기가 ‘원(元)’ 자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다. 이 산에 원적사(元積寺)라는 오래된 사찰이 있었다. 풍광이 좋은 숲속에 들어앉은 데다가 도량에 있는 샘물이 맛이 좋았다. 스님들도 불심이 깊고 신자들에게 친절했다. 어느 해부터인가 빈대가 생기더니 점점 늘어났다. 수천 수만 마리가 법당의 마루 틈과 기둥 틈에 들끓었다. 그러다가 스님이나 신도가 들.. 2023. 3. 8. 이전 1 ··· 572 573 574 575 576 577 578 ··· 5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