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497 문학산 사모지고개-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갑옷바위 문학산 사모지고개-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갑옷바위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2 12:19:02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갑옷바위 예전에 사모지 고개에서 동춘동쪽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바위 하나가 있었다. 이 바위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름이 바위 석함에 갑옷을 넣어 두었다 하여 갑옷바위였다. 그러나 실상은 상자 바위로 불리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 바위는 사방 둘레에 금이 가 있는 데다가 아래위 바위 두 개가 뚜껑을 맞춰 덮은 모양으로 포개져 있는 것이 영락없는 상자 모양이었다. 그러나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상자 아래 부분은 일찍이 없어지고 뚜껑 형상의 바위는 얼마 전까지도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도시화가 되면서 이 또한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 .. 2023. 3. 8. 대제학의 상여가 지나간 경서동 섬피둑길 대제학의 상여가 지나간 경서동 섬피둑길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2 12:17:33 대제학의 상여가 지나간 경서동 섬피둑길 조선 세종 때 일이었다. 현재의 경서동 범머리산에 갑자기 말을 탄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베로 만든 건을 쓴 사람들도 있었고 언젠가 이 마을에 나타난 적이 있는 부평 관아의 이방도 있었다. 마을의 좌수가 급히 신발을 꿰면서 달려 나가자 부평 관아의 이방이 말했다. “한양에서 대제학 류사눌 나리의 조카이신 공조참의 나리께서 오셨소.” “아이구, 못 알아 뵈어 송구스럽습니다.” 좌수는 허겁지겁 그 자리에 엎드렸다. 참의는 부평 부사보다도 두 직급이 높다. 건을 쓴 공조참의가 엄숙하게 말했다. “내 당숙부이신 대제학께서 오늘 새벽 숙환으로 돌아가셨네. 그대가 아는지 몰라도 당숙.. 2023. 3. 8. 영종도전설-방귀와 오이씨 영종도전설-방귀와 오이씨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2 12:16:34 방귀와 오이씨 영종도에 가난하게 살아가는 아들과 어머니가 있었다. 남편이 없어 어머니가 바느질품을 팔아 생활을 연명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하루는 아이가 엉엉 울며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놀라 이유를 물으니, 밖에서 놀 때면 아이들이 자꾸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린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아팠으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들이 끈질기게 물었다. “어머님, 왜 우리는 아버지가 안 계시는 겁니까? 동네 분들에게 듣자 하니 돌아가시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 어디에 계시며, 또 무슨 연유로 헤어져 사는 건지요?” 아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 2023. 3. 8. 영종도 중산동-사람 살린 가짜 지관 영종도 중산동-사람 살린 가짜 지관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2 12:15:01 사람 살린 가짜 지관 산소 자리를 봐 주는 사람을 지관이라 했다. 영종도 중산리에 한 지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중산리 마을에 떠돌이 청년이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개 정승이 돌아가셨는데, 그 정승의 산소 자리를 잡으려고 지금 야단이야. 좋은 자리를 잡아 주기만 하면 술이나 밥은 물론 옷도 주고 상금도 후히 준다는 거야.” 청년은 속으로 옳다구나 그 집에서 신세를 져야겠구나 하고 정승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지기가 그의 행색을 보고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청년은 다 떨어진 삿갓에 초라한 도포를 입고 있어 양반 행색이긴 하지만 거지나 별반 다름이 .. 2023. 3. 8. 인천 문학초교 뒤 수채골 이야기 인천 문학초교 뒤 수채골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1 12:08:55 헛수고로 돌아간 산신 우물가의 백일 기도 수채골은 옛 문학초등학교 교장 사택 뒷산 작은 골짜기를 말하는데 이곳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이 우물을 사람들은 ‘산신우물’ 이라는 이름 그대로 아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이 우물가에서 치성을 다해 백일 기도를 드리면 태기가 없던 사람도 아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우물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마을에 아이를 가지지 못한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세상 아무런 부러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아이가 없는 것이 근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이 수채골 산신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보, 수채골.. 2023. 3. 8. 강화 교동도 청주펄 이야기 강화 교동도 청주펄 이야기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1 12:05:41 마을이 사라지고 생긴 청주펄 강화도에 딸린 또 하나의 섬 교동도는 원래 3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다. 화개산, 수정산, 율두산 3개가 그 섬의 중심이었다. 그러다가 고려 때 강화도가 임시 수도가 되면서(1232~1270) 식량확보를 위한 간척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조선 시대에 와서도 계속되었고 많은 갯벌과 섬들이 그때 메워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교동도가 되었다. 교동도에는 지금도 간척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논 가운데에서 조개 껍질이 발견된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조개맨들’ 이 그 한 예다. 그리고 아직도 곳곳에 갯벌이 조금 남아 있다. 그 중 한 곳이 청주펄이다. 교동도에는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주(貞州)라.. 2023. 3. 8. 이전 1 ··· 570 571 572 573 574 575 576 ··· 5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