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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미추홀199

인천·요코하마 인천·요코하마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2-03 23:49:44 인천·요코하마 조우성의 미추홀 인천시가 자매도시로 처음 맞아들인 곳은 미국 LA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버뱅크 시다. 인구 100,316명(2000년 인구조사)의 소도시이나 워너 브러더스, 월트디즈니 등이 있어 '세계 미디어의 수도'라 불린다. 버뱅크는 그 후 스웨덴의 솔라(5만6천명), 일본 동경 북서쪽의 오타(太田)(21만7천명),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20만명) 등 비슷한 규모의 세 도시와 결연을 해 온 반면에 인천시는 교류의 다변화를 꾀했다. 지난 49년 간 인천시가 자매결연을 한 도시는 필라델피아(83년), 앵커리지(86년), 키타규슈(88년)에 이어 90년대의 천진, 하이퐁, 2000년대의 호놀룰루, 메리다, 카라.. 2023. 6. 8.
철도  철도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2-03 23:45:56 철도 조우성의 미추홀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퍼빗이 최근 '철도'에 투자하기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이 의아해 물었다. 왜 구시대의 유물 같은 철도에 투자하는가? 미국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의 한 학생도 그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사 주신 장난감 기차가 인연이 됐다. 철도는 연료가 트럭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대기오염이 적을 뿐만 아니라 기차 한 대가 트럭 280대 분량의 화물을 나를 수 있는 이 시대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여 전, 미국 공사로 일했던 이하영은 난생 처음 화륜거(火輪車·기차의 옛 이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889년 귀국해 고종을 알현하면서 가지고 온 폭 6치, 높이 8.. 2023. 6. 8.
박물관 100년 박물관 100년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11-08 01:47:15 박물관 100년 조우성의 미추홀 어쩌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면 필자는 현지의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고서점가를 즐겁게 순례한다. 그 세 군데만 돌아보면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대충 감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정해 놓은 코스이다. 그런 잣대로 들여다보면 인천은 실망이다. 갈 데가 별로 없다. 인천시립박물관은 그 수준과 접근성에서 낙제에 가깝고, 본격적인 미술관은 아예 없으며 고서점 다운 고서점은 창영동에 두어 집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물관 100년'이라 해서 연일 주례사 같은 맹탕 기사가 신문 문화면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는 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조차 이달에 들어 겨우 '고조선관(古朝鮮館)'을 신설한 처지이고 보면 사실은 더 할.. 2023. 6. 4.
인천 '정명 600년'  인천 '정명 600년'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11-02 19:18:05 인천 '정명 600년' 조우성의 미추홀 지난 15일은 제45회 시민의 날이었다. 그날 오후 6시 '송도컨벤시아' 1층 전시장에서는 시장, 시의회 의장, 시민, 학생 등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과 각종 시상식, 유명 연예인이 출연한 경축음악회 등이 열렸다. 성황이었지만, 참석인사들 중 그 자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6월1일, 7월15일로 이리저리 옮겨 치르던 '시민의 날'을 10월15일로 정한 데는 뚜렷한 정체적 이유가 있었다. 제자 자로(子路)가 "정사를 돌보신다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물으니 공자가 "필야정명호(必也正名乎)"라고 단호하게 표명했듯 이름을 바로 갖는다는 .. 2023. 6. 4.
월미성 재현  월미성 재현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10-27 18:29:57 월미성 재현 조우성의 미추홀 '월미도'가 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숙종 21년(1695) 때이다.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에 얼굴을 보인 '어을미도(於乙味島)'가 그것이다. 민간에서 불리던 섬 이름 '월미도'를 향찰식으로 표기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때 '월미'의 '미' 자를 꼬리 '미(尾)'가 아닌 맛 '미(味)' 자로 쓴 것을 보면, "섬의 생김새가 반달의 꼬리처럼 길게 휘어져 그렇게 불렀다"는 '달꼬리 설(說)'은 후세들이 갖다 붙인 문학적 수사였으리라 여겨진다. '어을미도'가 '월미도'로 바뀌어 나타난 것은 숙종 34년(1708)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홍명하가 행궁을 인천과 월미도에 설치하기를 건백(建白)하였습니다(洪命夏建白, 設行.. 2023. 6. 4.
양요와 왜요  양요와 왜요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10-06 23:21:05 양요와 왜요 조우성의 미추홀 지난달 하순 어느 날, 인천에서 발간되는 4개 일간지가 약속이나 한 듯이 1면 톱으로 전한 뉴스가 있었다. 제호 바로 밑에 큼직하게 컬러 사진을 쓴 것이나 두세 줄의 설명을 달고 있는 게 모두 같아 의아했다. 인천관광공사가 '인천 방문의 해'를 맞아 138년 전인 1871년 강화 광성보에서 벌어진 '신미양요'의 전투 장면을 재연했다는 게 캡션의 내용이었다. 사진은 '조선군과 미군'이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이를 일러 '조미전쟁(朝美戰爭)'이라고 하지만 국사 교과서는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고수하고 있다. 국가 간의 총력적 전쟁 수준은 아니었다는 해석인 것이다. '병인양요(丙寅洋擾)'도 그.. 2023.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