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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301

이규보 시화전 이규보 시화전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0-27 18:18:19 이규보 시화전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의 글이다. 52세 되던 1219년 탄핵되어 계양의 ‘도호부사병마금할’이 되어 계양에 부임하였다. 서울에 비해 시골이라 보잘것 없었다. 거처하는 곳도 누추하여 식구들이 모두 싫어했지만 그는 스스로 자족하고 즐긴다며 ‘자오(自娛)’라 당호를 짓고 연유로 ‘계양자오당기’를 썼다. 자오당터는 ‘오늘의 북구 계산동 문묘 뒤’라고 류희강의 ‘향토 인천의 안내’ 책자에 적혀있다. 이규보는 고려 고종때 문신으로 당대뿐 아니라 고려 전시대에 걸쳐 뛰어난 문장가이다. 고려 중엽 무신의 집권으로 문신이 수난을 당하던 때를 시작으로 몽골의 침략으로 국기가 흔들리던 시대를 거쳐간 인물이다. 어려서 시작에 능했다고 전하.. 2023. 6. 4.
밤과 낮을 왕복하는 밤과 낮을 왕복하는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0-06 23:13:00 밤과 낮을 왕복하는 이윤호 시인의 시 ‘밤과 낮 사이’이다. 케이블카는 산과 같은 비탈진 곳이나 계곡에 차량을 케이블, 곧 와이어 로프로 연결해 그 케이블을 감아올리는 교통시설이다. 주로 관광과 등산을 위해 시설하나 광산 따위에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산업용도 있다. 쌍방에 튼튼한 철탑을 세워 케이블을 걸치고 그 양켠에 차량을 매달아 사람을 실어 나른다. 이와 같이 케이블카는 공중을 오가는 것과 비탈진 곳에 레일을 깔고 케이블 양쪽에 차량을 연결해 케이블을 감는 기계로 오르내리게 하는 로프웨이식이 있다. 관광용은 1830년 역시 산악국인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19세기 말이 되면서 크게 발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 2023. 6. 3.
바지락 퍼담기 바지락 퍼담기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9-22 02:39:47 바지락 퍼담기 6·25가 있던 전 해 중2생이던 전망차자는 용유도에 나들이를 갔었다. 같은 동네 선배를 따라서였다. 그곳에 며칠 있으면서 겪은 경험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중의 하나가 바지락캐기였다. 용유도와 영종도 사이의 바닷물이 빠진 갯골에서였다. 아마도 지금의 인천국제공항 남측 제방 언저리라 짐작된다. 물 빠질 때쯤 동네사람들이 실어나를 황소를 앞세우고 나갔다. 바닷물은 완전히 빠지고 갯고랑에는 시내 흐르듯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 대형의 굵은 채를 세우고 모래를 삽으로 퍼 흘리면 모래는 씻겨가고 바지락만 걸러졌다. 이것을 가마니에 퍼담아 황소등에 져 날랐다. 이렇게 잡아들인 바지락은 밤새도록 아낙들이 작은 칼로 껍질을 .. 2023. 6. 3.
밴댕이 소갈머리 밴댕이 소갈머리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9-22 02:37:40 밴댕이 소갈머리 “제물포 안산 바다에 그물로 곱게 올린 밴댕이란 것이 장에 나오면 그놈을 사다가 석쇠에 구울 제 기름 간장을 바르면 냄새가 삼이웃에 진동하것다요. 그러면 상치의 물기를 탈탈 털곤 손바닥 위에 쩍 벌려 눕히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올벼 쌀밥 한 숟갈을 사정 두지 말고 듬뿍 떠서 담고 벌꿀 같은 된장을 얹은 뒤에 구워진 밴댕이나 밴댕이 젓갈을 올려 정들여 쌈을 싼단 말씀이오.” “밴댕이는 연기속에 있네/죽기 위해서 몸을 태우네/저승 바다에서는 죽어본 적이 없는/밴댕이는 석쇠 위에서 죽네/한잔 마신 소주처럼/온몸 가득한 가시처럼 속을 쑤시네/심지가 좁고 얕은 탓은 아니지만/우리 삶은 다 그렇다네/밴댕이는 지금 살기 위.. 2023. 6. 3.
순제의 유배지 순제의 유배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9-22 02:36:51 순제의 유배지 - 1996년 옹진군청이 간행한 ‘옹진군향리지’에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에 실린 대목이며 옥자포는 옥죽포의 옛지명이라고 한다. 궁궐 내 파벌싸움으로 원나라 순제가 태자이던 시절 우리땅의 고도 대청도에 유배되어 왔다. 1332년의 일이라고 한다. 황해를 건너온 그는 옥자포에 상륙해 궁궐터인 지금의 내동초등학교까지 10리길을 걸어갔다고 전한다. 당시 태자가 거느린 식솔은 100여호였다고 하니 큰 마을을 형성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때 태자는 자신이 머물던 곳을 장안이라고 칭하는 등 도읍지의 이름을 붙였다. 이를테면 식량 창고가 있었던 곳은 곡간이 있는 곳이라하여 庫舍洞(고사동)으로 하는 따위이다. 유배중이던 태자는 .. 2023. 6. 3.
햇살 가득 고추말리기 햇살 가득 고추말리기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9-22 02:35:43 햇살 가득 고추말리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고추를 남쪽의 야만인이 먹는 개자라 해서 남만초라고 했으며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왜개자라고 했다고 한다. 전설로도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우리를 독살하느라 들여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북쪽 오랑캐에서 전래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들어온 듯하다. 그러나 일본측 문헌에는 오히려 한반도에서 일본에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로 보아 고추를 사용한 역사가 오래인 듯해도 실은 400년이 조금 초과했을 뿐이다. 고려 때부터 있어온 것으로 추측되는 김치에 고추로 양념하지 않았다. 도입 고추가 사용됨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식품이요 오늘날 세계적.. 2023.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