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광철의 전망차301

도시의 꽃 도시의 꽃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1-18 14:53:11 도시의 꽃 지금 처럼 간판을 두고 경쟁하듯 치열하지 않았던 시절-50년대에 동방극장(지금의 신포동 외환은행 뒷골목) 옆집에 걸려있던 간판 하나가 지금도 눈에 잡힌다. 자연목을 켜서 조각한 돼지 모습에 ‘돈까스’라고 세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게 했었다. 아마도 그 옥호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그것만으로 돈까스집인 것을 알아 차렸을게다. 근래 우리나라 도시들을 일러 ‘간판공해’요 ‘간판의 난장판’이라고 할 만큼 간판이 어지럽다. 외국 처럼 아름답고 재미있는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눈에도 그럴진데 외국인의 눈에는 어떨까 궁금하다. 어느 방한객은 색깔과 개성없이 절제와 조화를 잃고 난립하여 분방한 여인의 짙은 화장같다고 .. 2023. 6. 5.
고려사의 복원 고려사의 복원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1-02 19:13:47 고려사의 복원 풀이하면 이러하다. “퇴락한 옛무덤이라 대낮에도 어둑하니/천년에 걸친 자취 꿈인양 아득하다/어찌타 황혼길을 가셨을까/혼이야 촉나라 두견새 처럼 쉬지않고 울어대네” - 강화도 출신 학자 화암(華菴) 유형석(兪衡錫)의 칠언시 ‘홍릉소감(弘陵所感)’이다. 그 분은 수많은 시를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는데 80년대에는 전국노인백일장에 참가 서예부분 등에서 장원을 했다. 사적224호 홍릉은 강화읍 국화리 고려산 동남쪽 청소년 야영장 입구에 위치한다. 고려 23대 고종의 능침인데 왕릉으로서는 초라하다는 느낌이다. 그나마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조선조 현종때 유수 조복양에게 명하여 답사하고 왕씨로 하여금 능참봉을 내리며 춘추로 관리.. 2023. 6. 4.
경찰학교 자리 경찰학교 자리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0-27 18:22:12 경찰학교 자리 오늘날의 부평역 일대를 ‘동수재이’라고 불렀다. 특히 부평읍 사람들(오늘의 계산동)이 변방을 부르듯 했다. 동수재이란 옛 부평군이던 시절 동소정면(同所井面) 관내였던데서 기인한다. ‘동소정’이 동수재이로 아음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소정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부평역전 로터리 인근에 직경 5m가 넘고 물이 흔한 대동우물이 있어 인근 주민들이 모두 이 물을 마셨다고 해서 동소정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부평역 인근을 동소정면 대정리(大井里)라고 한 것을 보면 큰우물이 있었던 것 만큼은 틀림없었던듯 하다. 이를 유래로 하여 북구 부평6동은 부평2동에서 분동할때 동수동(東樹洞)이라고 했다가 부평6동으로 굳혔다. 동수재이라는 속.. 2023. 6. 4.
꽃가마를 타고서 꽃가마를 타고서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0-27 18:20:41 꽃가마를 타고서 서양 여인이 두명의 가마꾼이 멘 가마를 타고 즐거워 한다. 가마라고 하지만 지붕없는 의자 모양이어서 남여라고 해야 옳겠다. 곁에는 자전거에 앉은 남편이 함께하고 있다. 창영동 선교사 저택의 현관에서 이다. 자전거의 주인공은 케이블이요 가마를 탄 여인은 부인이다. 가마를 호기심있게 여겼던 듯하는 모습이다. 누구든 다른 문화를 접하면 신기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전망차자가 입수한 몇장의 사진중 한 커트이다. 케이블 선교사는 1899년 내한하여 연희전문 교수를 거쳐 인천지방에서 활약했다. 특히 계산동과 박촌 일대에서 였다. 가마는 예전 집 모양으로 꾸민 탈 것이었다. 앞뒤에서 가마꾼이 두명 혹은 넷이서 들거나 어깨에 메.. 2023. 6. 4.
국내 최장 인천대교 국내 최장 인천대교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0-27 18:19:54 국내 최장 인천대교 아주 오랜 옛날부터 길은 있었고 길을 잇는 다리도 있었다. 그 곳은 골짜기의 낭떠러지거나 물이 흐르는 시냇가였다. 그 곳에 다리는 놓아져야 했다. 처음엔 계곡을 가로질러 넘어진 통나무나 칡넝쿨을 엮어 이용하고 돌을 주워다 징검다리를 놓았을 것이다. 이를 응용하여 나무를 켜고 돌을 다듬어 다리를 놓더니 철강업이 발달하면서 철교가 등장했다. 기네스북에 나오는 역사상 가장 오랜 다리는 BC 3,200년 수메르인들에 의해서 였다. 그들은 이미 다리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 현존하는 오랜 다리는 터키의 멜레스강에 놓인 아치형으로 BC 850년에 건조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로마인들이 가설한 다리의 흔적들이 발견되는.. 2023. 6. 4.
정족산의 삼랑성 정족산의 삼랑성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0-27 18:19:01 정족산의 삼랑성 초지대교를 건너 온수리로 향하면 전방에 정족산이 나타난다. 전등사를 감싸안은 세 봉우리의 산이다. 마치 솥을 뒤집어 놓은 산세이다. 지금의 솥 모양과 달라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군주들은 조리용이 아니라 권위의 상징으로 솥을 지녔는데 발이 세개 혹은 네개 달렸다. 즉 솥정(鼎)이어서 ‘정립’이나 ‘정족지세’라면 ‘셋이 맞선다’는 뜻이다. 강화도의 정족산이 꼭 그같은 산세이다. 그런데 정족산에는 산성이 있어 정족산성 혹은 삼랑성이라고 하는데 삼랑성에 대해선 단군의 세 아들이 축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단군이 세아들을 불러 정족산에 성을 쌓는데 돌이 많이 있어야겠으니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세 아들은 셋이서 힘을.. 2023. 6. 4.